이제 크루즈 건조 산업에 눈을 돌릴 때…

2014.05.19 11:15:56

 세계 조선 업계 1위의 한국.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의 500원지폐 거북선 일화를 시작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세계의 조선 업계을 제패해왔다. 중국, 인도, 브라질등 신흥 조선강국들의 추격이 가시화되는 지금, 이제 한국의 조선 업계는 어떤 미래를 바라볼 것인가. 지구의 71%를 차지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바다. 이 시대는 21세기 조선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과 해운의 꽃’이라 불리는 크루즈산업은 나라경제에 큰 역할을 할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루즈 기항시 발생하는 항만사용료, 연료비, 승객용 및 부식구비비, 선박수리비등은 조선, 건설, 전자, 식품, 금융, 수산업과 직결된다. 크루즈선사가 한국을 모항으로 삼을 경우 농축산업, 수산업, 숙박업, 항공, 교통산업의 발전 및 고용창출효과 또한 크다. 그러나 크루즈산업의 정점은 크루즈 건조업이다. 크루즈선의 기항 및 모항이 항만위주의 지방경제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크루즈 건조업은 국가전체 경제발전에 큰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때다. 전 세계 조선 및 해운업계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조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는 현 상황에서 크루즈 건조업은 그 유일한 대안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원자재인 철강재를 100으로 했을 때 대형유조선의 경우 약 219, FPSO는 1,250의 수준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반면 크루즈선의 경우 2,000에 이른다. 내년부터 중국 상하이를 모항으로 아시아시장에 진출하는 로얄 캐리비안(Royal Caribbean)사의 167,000톤급 퀀텀오브더씨(Quantum of the Seas)호의 가격은 1조 5천억 원.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각광받고 있는 드릴 십(5천억~6천억 원), LNG선(천억~2천억 원)과는 상대가 안되는 가격이다.

 유럽 조선소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던 크루즈 건조가 이제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서 본격화 되고 있다. 작년 3월 호주의 광산재벌 클라이브 파머는 100년 전에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를 본딴 ‘타이타닉 2호’를 중국의 진링조선소에 의뢰했다. 이것은 세계 조선 업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으로 급격한 중국의 경제성장의 강력한 추진제 역할을 해온 중국의 조선 산업이 이제 거시적 시점의 마스터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오는 2016년 타이타닉 2호를 진수하면 중국은 세계 크루즈 시장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조선 업계에서만큼은 한국의 쓴맛을 본 일본 또한 두 팔을 단단히 걷어 붙였다. 미쓰비시(Mitsubishi) 중공업은 컨테이너선 등 상선 건조에는 큰 수익이 없다는 판단 하에 2004년 프린세스 크루즈(Princess Cruises)사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크루즈 2척을 건조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아이다(Aida Cruises)사의 12만 5천 톤급 크루즈 2척을 건조하면서 그 입지를 꾸준히 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크루즈 건조 산업에 진출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삼성중공업이 미국 크루즈선사인 유토피아가 실시한 11억 달러 규모 크루즈 건조 입찰에서 계약대상자로 단독 선정된 일이 있었다. 당시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한국 조선 업계가 진정한 세계 1위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크루즈 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만큼 이번 크루즈선을 세계가 놀랄 만한 명품 선박으로 건조해 한국 조선 업계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서 선주사가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지자 본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져 결국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지금은 와해된 STX그룹이 지난 2008년 세계 3대 크루즈 조선사중 하나인 아커 야즈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한국의 크루즈 건조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인 22만 톤급 오아시스오브더씨(Oasis of the Seas)를 출항시키며 ‘한국이 만든 크루즈선’이라 선전하였지만 STX 유럽이 아커 야즈의 지분을 가졌던 것일뿐 순수 국내 기술력이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 조선 업계가 크루즈 건조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크루즈선 특유의 기자재 공급시장의 기반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크루즈선은 선박의 최대 75%가 호텔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놀이공원, 수영장, 카지노, 대공연장등 여러 위락시설이 들어서게 되는데, 모두 최고급 호텔 수준의 인테리어를 요구한다. 디자인과 시공의 완성도가 중요함은 물론, 안전, 무게, 재질 그리고 소재의 퀄리티까지 크루즈선 특유의 기자재들이 필요하다. 화물의 운송이 주가 되는 일반 선박설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 것이다. 예컨대 일반상선은 엔진이나 후판, 기자재 등만 납품하면 된다. 그러나 크루즈선은 이들 부품을 갖춘 상태에 진동 최소화 장비나 크루즈선에 특화된 객실 인테리어, 주방, 화장실, 침실용 기자재등 기존 선박 몇 배 이상의 산업 군과 연관돼 있다. 초호화 크루즈선의 경우 100% 유럽산 기자재가 사용된다. 많은 수입 인테리어재의 유통 및 그 수입제를 대체할 내수조달 협력업체가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전무하다. 그렇게 로열티, 운반료, 관세, 관리비를 지불하다 보면 투자 대비 효율이 일반상선급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인테리어 분야의 설계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반상선은 디자인과 시공이 비교적 단순하여 조선소 내부인력으로 소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크루즈선은 선박 외형 스타일링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도하는 전문인력 ‘인테리어 아키텍트’(Interior Architect)가 존재한다. 이들은 크루즈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떤 인테리어로 승객들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할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크루즈 특화인력이다. 초대형 크루즈선의 경우 이런 ‘인테리어 아키텍트’ 업체 10곳 가량이 각기 다른 시설(수영장, 식당, 극장 등)을 관할하여 설계를 진행한다. 호텔 및 인테리어 시공 비용이 크루즈 건조 비용의 40%에 달한다고 하니 이런 ‘인테리어 아키텍트’의 설계 노하우야 말로 크루즈 선사의 흥망성쇠의 키를 쥐고 있는 진정한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Fincantieri), 핀란드의 ‘아커 핀야드’(Aker Finnyarrds), 독일의 ‘마이어베르프트’(Meyer Werft)의 세계 3대 크루즈 조선소가 시장의 80%를 독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은 과연 크루즈 건조국으로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크루즈 전문여행사 ‘클럽 토마스’의 대표이자, 한국 크루즈 융성 법안 통과 위원회의 염상훈 대표의 말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조선업 세계 1위, 해운업 세계 5위의 한국이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인 것처럼 여객산업은 아직도 후진국이다. 크루즈선 건조산업을 시작한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성장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크루즈선은 사람을 위한 배이기 때문이다.” 뼈아프게 담고가야할 이야기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신조정책을 장려해야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게 되어있다. 삼성중공업의 기술력이라면 세계적인 크루즈선도 문제없다.”라며 나름 큰 가능성을 점쳤다. 

 세계 3대 크루즈 선사 중 하나인, 카니발 코퍼레이션(Carnival Corp.)의 한국지사 김연경 실장이 말하는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당장 크루즈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크루즈관광의 붐을 일으킬지를 고민하는 것이 거시적인 크루즈 건조대국의 시작이라고 본다.” 시장이야말로 제조업을 이끄는 가장 큰 손이며 문화는 시장을 진작시키는 가장 큰 요소라는 말이다.

 ‘사람을 위한 배 = 크루즈’라는 인식으로 한국의 크루즈 건조 산업의 미래를 시작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이제는 세계 최초, 최대, 최고의 신기록을 경신하는 습관을 버려야한다. 긴 안목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유럽조선소를 답습하는 방식이 아닌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창의적인 자세를 통해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해야 한다.

 중국을 모항삼은 초호화 크루즈선들의 기항횟수가 매년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이때, 크루즈 건조강국을 위해서 진정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이제는 서서히 생각하고 실행해 옮길 때다.

글. 신승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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