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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오리 사이보그 되다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군집을 이루어 산다. 떼를 지어 나는 모습이 장관인지라 주로 군무 사진들로 유명한데 자세히 보면 꽤 덩치도 크고 예쁘게 생겼다. 얼굴에 노랑과 녹색 태극무늬가 있어서 북한에서는 태극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어 명 Baikal Teal. 이름 그대로 바이칼 호에서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한국 땅에 들어와 겨울을 난다. 바이칼 호수에서 우리나라까지 장장 4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쉬지 않고 꼬박 일주일 가량 날아온다. 장거리 비행을 대비해 먹이를 잔뜩 먹고 몸을 부풀린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스태미너이다. 그 가공할 생명체들이 지난 달 수만마리씩 집단으로 떼죽음을 했다고 한다.

 정초부터 한반도를 강타한 조류독감 파동의 주 발생원인이 겨울철 대표철새인 가창오리로 파악됐다. 가창오리는 겨울 강변을 아름답게 수놓는 관광자원에서 닭과 오리를 집단 폐사시키는 병균의 보균자로 신세가 급전락했다. 떼죽음당하고 있는 가창오리를 보러 철새도래지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가창오리를 생각하기 보다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게 인간사회의 관심사일 뿐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조류독감 못지않은 악성바이러스가 퍼졌다. 1억명이 넘는 신용카드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불법으로 유출된 것이다. 정확한 원인규명과 진정성 담긴 사과 그리고 후속 조처가 없어서 피해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방역 당국에서는 지난 1월 26일 전북지역에 있는 가창오리 한 마리를 잡아 GPS를 부착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한 마리가 조류독감의 주범은 아닐진대도 운명적으로 선택된 그 가창오리는 앞으로 GPS를 통해 집단의 이동경로를 인간들에게 알려주게 된다. 생명체와 기계장치가 합성됐으니 엄연한 사이보그인 셈이다. 가창오리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조류독감의 원인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이 오리들의 이동경로를 바꾸거나 식생활에 변화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조류독감의 원인과 방역을 위한 연구차원의 조치이다. 어쨌거나 그 가창오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이보그가 되어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간사회에서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 바이러스는 그 주범과 유출 루트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사건인데도 그에 합당한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억울하게 선택된 가창오리에게 GPS 장치를 부착시키는 정도의 조치도 없다. 개인정보를 유출한 인간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못지않게 해악스러운데도 말이다.

 가창오리의 떼죽음을 보며 치킨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개인적 안위만 걱정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보고 신용카드를 재발급하느냐 해지하느냐 하는 것은 도덕성 문제를 떠나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현실호도인 것이다. 인간 세상에 퍼진 악성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선 누구에게 GPS를 달아야 할까. 그저 가창오리가 가상할 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참 사는 게 갈수록 퍽퍽해지고 있지만 어김없이 삶은 지속된다. 사람들은 불안하면서도 명절대목에 카드 지출을 할 수밖에 없고 가창오리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떼죽음을 감수하고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만 한다. 2월은 금강 하구에서 가창오리들의 군무를 보기 좋은 계절이다. 사이보그 가창오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건강한 가창오리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글. 김지태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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