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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갑질’ 왜 반복되나

 프랑스어로 ‘닭의 벼슬’을 의미하는 노블리스와 ‘달걀의 노른자’를 의미하는 오블리제의 합성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닭의 사명이 자신의 벼슬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는데 있음을 일깨워 주는 말이라고 한다. 즉,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초기 로마시대에 몇몇 왕과 귀족들이 투철한 도덕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보인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게이츠와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런버핏 등 세계적 거부들이 전 재산의 99%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경주 최부자 가문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상 보기 드물게 300년 동안 12대에 걸쳐 부를 유지하면서 단 한 번도 국민적 원성과 지탄을 받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최부자 가문이 도덕적 의무를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대대로 신조로 삼고 실천해 온 가문의 육훈(六訓) 때문이다. △진사 이상 벼슬 하지 마라 △ 만석 이상 재산 쌓지 마라 △ 흉년기에 땅 사지마라 △ 과객에 후하게 대접하라 △ 사방 백리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 입어라 등이다. 이런 최부자집의 훈육은 사회라는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일군 부를 사회에 되돌려 주는 것은 당연시 하되 더불어 사는 삶을 솔선수범하고 부자인 것을 티 나지 않도록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그야말로 ‘회장님 갑질’을 봐야 하는 시대이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제멋대로 삶’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된지 오래다. 김만식(76)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직원을 수개월간 상습 폭행하고 심지어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잇값도 못한 ‘대단한 슈퍼 갑질’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불매운동까지 펼쳐지면서 100년 전통의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e-편한세상으로 잘 알려진 대형건설사 대림산업그룹의 오너 3세인 이해욱(49) 부회장은 ‘더한 갑질’의 장본인이다. 자신의 운전기사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과 폭행을 일삼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해고해 1년간 무려 40여명의 운전기사를 갈아치웠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시가총액만 수조원대에 이르는 대림산업을 이끌 후계자라니 그룹의 장래가 걱정이다.


 이번에는 ‘미스터피자’ 브랜드 회장님의 갑질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우현(68) MPK그룹 회장 자신이 소유한 식당에서 경비원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규정을 지켜 정시에 문을 닫았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그것도 나이 지긋한 58살의 중년에게 ‘내가 회장인데 감히…’라는 생각과 함께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못된 손버릇이다. 정 회장은 미스터피자 누리집에 사과문을 올렸다. 진정성은 당연히 없는 채 말이다. ‘팔을 휘두르다가 경비원 뺨 쪽에 맞은 것’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경비원 목과 턱 사이를 두 차례 정도 때리는 장면이 식당 내부에 있는 폐쇄회로TV에 고스란히 찍혀 있는데도 말이다.





 정 회장의 ‘갑질’ 후폭풍은 거세다. 당연한 결과다. 미스터피자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MPK의 주가는 연일 큰폭으로 하락했다. 400여개 가맹점들이 매출 급감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 갑질’의 유탄을 힘없는 또 다른 ‘을’이 맞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맹점은 정 회장의 진심어린 대국민사과 요구와 함께 그동안의 각종 폭정을 잇따라 폭로했다.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정 회장은 가맹점 월매출의 4%를 광고비로 받아 이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자서전을 제작하고 베스트셀러 욕심에 가맹점당 수백 권씩을 사도록 강요했다. 식자재대금 카드 결제 요구에는 갖은 폭언이 뒤따랐고 주재료 납품과정에 친인척을 끼어 넣어 거래단계를 늘리는 방법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갑’의 대명사가 되고도 남겠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심심찮게 터지고 있는 ‘회장님 갑질’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들만의 생각 때문이다. ‘갑질’을 한 뒤 여론이 들끓으면 하나같이 내놓는 사과문만 봐도 그렇다. 진정성은 커녕 마지못해 떠밀려 건성으로 반성한다. MPK 정회장도 회사 홈페이지에 다른 임직원이 썼을 사과문을 올린 것이 고작이다. 아직도 내가 왜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부를 일군 나인데 ‘그 정도’를 갖고 왜 그러는지 오히려 의아해 할지 모른다. 참으로 한심하다.


 그러면 왜 이런 ‘회장님 갑질’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인성(人性)교육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입시위주 주입식 교육 때문에 사람 됨됨이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만을 가르치다보니 우리의 꿈나무들은 상대를 짓누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돈 많이 벌면 돈을 번 과정은 무시된 채 무조건 박수갈채를 받는 사회이니 ‘황금만능주의’가 최상의 가치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지경이다. 경주 최부자의 육훈이 새삼 뇌리에 와 닿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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