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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투성이 ‘살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질 일이다. 수백명의 국민이 피해를 보고 숱한 진정과 호소에도 무려 5년간이나 잊혀지다시피한 ‘살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정부나 수사기관, 언론까지 이렇다할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왜 5년 만에 검찰이 새삼 본격 수사에 나섰는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준 기업들이 이제 와서 왜 보상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지 등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동안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원망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텐데도 말이다.


 대형할인점 롯데마트는 지난 4월18일 느닷없이 김종인 대표이사의 사과문 발표를 통해 “공식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피해여부 확인이 어려웠다는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원인규명과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점을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자체 브랜드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업체 가운데 하나이다. 100억원 이상의 보상기금 마련 등이 담긴 보상대책을 함께 내놓았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5년간이나 지켜오던 침묵을 깨고 자초지종을 생략한 채 사과와 대책을 밝힌 것이다. 검찰의 본격 수사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롯데측은 이번 사과 및 보상대책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종 결정에 따라 이뤄진 점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다. 과거와 사뭇 다른 태도이다. 과거 같으면 모르쇠로 일관했을 롯데다. 돌변한 이유는 뻔하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어진 형제간의 다툼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형인 신동주 부회장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쥔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또다시 그룹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상대가 반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어찌됐던 늦은 감은 있으나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에 나서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가 1, 2차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는 모두 143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3차 조사에서 새로 신고한 피해자 752명 가운데 이미 사망한 79명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신고 받은 피해자 만해도 246명에 이르고 이 중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런 수치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수백만개의 가습기용 살균제가 판매된 만큼 영문도 모른채 알게 모르게 숨을 거뒀을 피해자들까지 더하면 가습기 살균제의 충격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대참사라는 말이 딱 맞다. 건강을 위해 사소한 세균까지 제거할 요량으로 사용한 살균제가 ‘독가스’가 될 줄을 누구도 몰랐다. 제조사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출발점은 5년전인 지난 2011년 4월 급성호흡부전을 호소하는 임산부 환자 28명의 잇단 병원 입원이다. 한 두명도 아닌 집단으로 발병하자 의료진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질병관리본부가 4개월 뒤에 임산부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영국계 기업인 ‘옥시레킨벤키저’가 있다. 생활용품인 ‘옥시크린’과 ‘물먹는 하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문제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회사이다. 이 제품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수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12년간 453만개나 팔았다고 한다. 옥시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의 70%인 103명에 이른다. 롯데와 홈플러스는 옥시제품이 잘 팔리자 이를 본 따 만들었다. 이들 회사 모두 외국에선 수영장이나 정화조 청소에 사용하는 폐 손상 물질이어서 흡입이 금지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까지 제품에 붙여 놓고 팔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더군다나 옥시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내고도 롯데나 홈플러스처럼 사과를 하거나 책임을 인정하기는 커녕 피해자를 회유하는데 급급했다고 한다. 은폐 의혹까지 사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옥시는 은밀하게 가족단위로 피해자를 개별 접촉해 손해배상액과 조정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공개 못할 무슨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사건이 본격 불거지기 시작한 2011년 말에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새 법인을 설립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동안 애써 다져 놓은 생활용품 시장을 하루 아침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간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한 호서대 모 교수가 옥시로부터 통상 수백만원인 자문료 수준을 크게 웃도는 수천만원을 계좌로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의 나라 영국기업인지 의심스럽다. 옥시를 둘러싼 의혹이 참으로 많다. 죄상이 드러나면 이 땅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마땅하다.


 해당 업체는 그렇다치더라도 우리 정부과 검찰의 안이한 대응은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속 시원한 해결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는데도 아마 절차와 규정만 따지다 시간만 허비했을 공산이 크다. 불을 보듯 뻔하다. 사안의 중대성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이다. 실제로 제품의 판매금지나 행정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에 충분한 소명기회를 주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에 투자해 준 고마운(?) 외국계 기업인데 더 신중한 자세로 규정을 따졌을 지도 모른다. 기업논리에 국민의 생명은 아예 뒷전인 셈이다. 검찰 또한 늑장 수사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례없는 최악의 화학제품 사고인데도 작년 10월에야 수사에 나섰고 5년만에 피해자 조사를 마무리하고 제조사 관계자 소환에 들어갔다.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살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월호 참사에 못지않다. 일개 기업의 도덕 불감증으로 산모와 영아들이 헛되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도 수많은 생명들이 숨 조차 제대로 못쉬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보상금이라 한들 피해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달랠 수 있겠는가. 일벌백계(一罰百戒) 차원에서 필요하면 국정조사라도 벌여 어떻게 ‘살인 제품’이 수년간 아무런 저항 없이 유통될 수 있었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것이다. 책임소재를 세심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우리 소비자들도 가진 자들의 ‘갑질’에 분노하듯 이익에 눈이 먼 ‘파렴치’ 기업에 대해서는 내 일처럼 앞장서 본떼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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