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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대망론’의 명(明)과 암(暗)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언제인가 대권 후보자 지지율 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아마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막중 책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라 믿었다. 지금까지 9년 이상 유엔을 이끌고 있는 인물인지라 본의는 아니지만 한국 정치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모습이 국제사회에 비춰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추측했다. 이를 본 순진한(?) 우리 국민 모두는 대권보다는 지금의 주어진 책무에 충실하는 훌륭한 분으로 반 총장을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5월25일 방한한 반 총장의 행보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종전과 달리 작심한 듯 대권 도전 의지를 추측케 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것도 방한 공식일정에 앞서 참석한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포럼에서 뱉어냈으니 이런 추측은 당연한 결과다. “국가 통합을 위해 계파와 지역 파벌을 없앨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찾아야 하는데 남북대화채널을 유지해온 건 내가 유일한 것 같다” “임기후  한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고민 하겠다” 등등이다. 대통합을 지도자상으로 제시하고 최대의 정치현안인 남북문제까지 언급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인 김종필 전 총리를 방문해 이른바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경북 안동과 경주를 차례로 찾아 대구·경북(TK)의 여권 핵심 지지층을 다독이는 모습도 연출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서애 류성룡의 안동 하회마을 고택을 찾아 주목나무를 식수하고 경북도청 신청사를 들렸다. 5박 6일 동안 여권 정치인과 관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도 격의 없이 두루 만났다. 누가 봐도 명백한 대권 행보다.


 이런데도 반 총장은 방한 말미 출국에 앞서 7개월 남은 자신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의식한 듯 방한 행보와 관련한 확대 해석이나 추측을 자제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냥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회원국을 방문한 것으로 봐 달라는 것이다. 나중 뒷말이 나올 것을 의식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처럼 들린다. 직업 외교관다운 발언이다. 몸과 입이 따로다. 반 총장의 별명이 ‘기름장어’ 아니던가. 상황이 벌어지면 기름장어처럼 교묘히 잘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장어 자체도 미끄러운데 기름까지 발랐으니 오죽하겠나 싶다. 외교관으로서는 최상의 처신일지 모르나 그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는 무책임의 극치일 수 있다. ‘정치인 반기문’은 또 다른 문제다.


 반 총장의 이런 행보는 우리 정치권의 현 상황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몰고 왔다. 우리 정치권은 20대 총선을 치르면서 여소야대의 3당 체제가 됐다. 혹독한 민심의 매질도 경험했다. 민의를 외면하다 곤욕을 치렀다. 내년 대선 후보 구도도 혼돈 그 자체다. 특히 여권은 후보군에 끼일만한 이렇다 할 후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여권이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바로 ‘반기문 대망론’이다. 벌써부터 ‘충청권+TK 연대’를 점치는 분석도 있다. 야권에 맞서 비장의 무기로 반기문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야권 또한 반기문의 대권 행보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문재인, 안철수가 유력주자이나 누구하나 양보할 가능성이 없어 자칫 어부지리를 줄 가능성 때문이다. 반 총장도 이런 분위기를 읽고 마치 먼저 ‘간’이라도 볼 요량으로 방한 일정을 짠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다.





 ‘반기문 대망론’은 명(明)과 암(暗)이 분명하다. 우리는 남북대치 상황과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국가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권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그저 답답함뿐이다. 차기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내년으로 다가왔는데도 기대를 걸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고 ‘그 나물에 그 밥’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반기문은 기존 정치인과 분명 다르다. 국제사회를 이끌 만큼 지도력도 인정을 받았다. 정치 때도 묻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이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존 대권 잠룡들을 자극하고도 남을 만하다. 대선 흥행을 기대케 한다. 그렇지만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반 총장이 조직력 확보 차원에서 기존의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권 욕심에 ‘충청 대망론’을 기치로 내걸어 지역 구도를 부추기고 특정 계파를 등에 업는다면 국민적 기대는 또다시  좌절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반기문 대망론’의 어두운 구석이 될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대통령이 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사무총장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이 된 사례는 더욱 없다. 사무총장의 자리가 철저한 중립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자칫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살 수 있다.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반기문 사무총장을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고 벌써부터 혹평하고 있지 않는가. 국제사회의 이목도 반 총장에게 쏠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반 총장 개인은 물론 나라 망신까지 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 또한 반 총장이 남은 임기동안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우리 국민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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