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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한진해운과 ‘기사회생’ 현대상선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큰 말은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Too big to fail’이다. 경제 개념으로는 규모가 큰 회사는 회사가 망하는 것 자체가 경제 전반에 큰 재앙이 되기 때문에 정부 등이 나서 어떻게든 살릴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기대 심리를 일컫는다. 이 말을 너무 믿은 것일까.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결국 벼랑 끝에 몰렸다. 채권단과의 협상이 무산되면서 31일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40년에 가까운 긴 세월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판이다. 국적 해운사의 운명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됐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자세로는 대마(大馬)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한진해운은 어떤 회사인가. 고 조중훈 창업주가 조국을 수송업으로 일으켜 세우겠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경영이념으로 탄생했다. 1977년 국내 첫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출발한 한진해운은 15년 뒤 국적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국내 해운업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경영을 독자적으로 맡게 된 고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해운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한진해운의 운명도 속수무책 내리막길을 탔다. 급기야는 조양호 그룹회장이 나서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고 1조원이 넘는 자금까지 쏟아 붓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해운업 불황의 파고를 넘진 못했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마저 육해공 종합물류그룹을 꿈꾸던 창업주의 꿈이 무산되고 재계 10대 그룹에서 이탈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한진해운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데에는 한진그룹의 소극적 자세가 한몫 했다.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기사회생한 현대상선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국내 해운업계 1, 2위를 다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40년 안팎의 기업 역사부터 창업주에 이어 2세 경영시대에서 위기에 직면한 점 등에 이르기까지 판박이다. 그러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 노력은 판이하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 등 4개 계열사를 매각하고 현정은 회장 등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모두 5조20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축소되는 고통까지 감내했다.


 반면 한진그룹은 조양호 그룹 회장과 한진해운 위기의 장본인 가운데 하나인 최은영 회장이 이렇다할 사재 출연 계획조차 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했다. 자산 매각 계획은 아예 빠졌다. 회생 자금도 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조2천억원에 불과했다. 뼈를 깎는 노력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은 현대상선은 부채 비율을 200% 아래로 낮춰 회생의 길로 들어서고 한진해운은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다.





 정부의 움직임 등을 보면 한진해운이 회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청산 절차를 밟을 것이 유력하다. 이로 인해 앞으로 불어 닥칠 후폭풍은 만만찮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말처럼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바에야 1조원의 투입자금을 포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친인 창업주의 꿈을 저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국익 차원에서 조 회장의 선택이 옳은지는 따져 봐야 할 사항이다.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우리의 수출품을 제때 실어 날라 줌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간이 해운업이다. 세계 7위의 한진해운 위상이 곧 국가의 위상이었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부실을 한시바삐 털어 내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 국가의 신의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진해운 법정관리의 후폭풍은 당장 부산지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부산항발전협의회 등 20여 개 해운·항만 관련 단체는 한진해운이 쓰러지면 연간 7조~8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2천30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아우성이다. 부산경제가 무너지게 생겼다는 것이다. 단순한 금융논리로 40년간 쌓아온 전 세계 네트워크를 한순간에 잃게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부산항이 세계 6위의 동북아 허브항만으로 발전하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대표적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이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는 현대상선을 ‘흑기사’로 등장시킬 생각이다. 선박과 영업망 등 한진해운의 ‘알짜’ 자산을 인수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부 유출도 막고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해운업계 2위의 현대상선이 1위인 한진해운을 사실상 인수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운임 하락으로 올해 상반기에 4천1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칫 현대상선마저 부실의 늪으로 몰고 갈까 걱정되는 부분이다. 면밀한 분석과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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