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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과 공정 경쟁사회



 2016년 9월28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의 첫 고동을 울린 날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법인데다 숱한 논란의 담금질까지 당한 끝에 탄생한 만큼 시행이라는 첫 발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검은 돈’의 뿌리를 뽑아낸 금융실명제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 중에 최상위로 분류되는 공직사회의 고질적 부정부패를 걷어내기 위한 것이니 국민적 관심과 기대는 남다르다 하겠다. ‘클린 코리아’를 향한 진일보다.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과 폐습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을 기회를 맞았다.   


 ‘김영란법’ 탄생의 배경은 2002년 부패방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가 끊이질 않으면서 비롯됐다. 이런 배경의 결정타는  2010년 ‘스폰서 검사’와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향응과 금품 수수에도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김영란법 입법의 불쏘시개가 됐다. 별도의 법 제정에 대한 여론이 들끓은 것은 당연하다. 검찰이 제식구를 구하기 위해 내세운 ‘직무 관련성’이 오히려 ‘김영란법’의 핵심 내용이 돼 되돌아 온 것이다. 검찰에 있어 ‘직무 관련성’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었던가.   





 ‘김영란법’이 첫 발을 내딛기까지는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으로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제안하고 2012년 8월 국민권익위가 금품 등을 100만 원 이상 받은 공직자를 형사 처벌하는 내용의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입법 예고한 것까지는 그나마 순탄했다. 그러나 법무부 등 부처 간 이견, 광범위한 법 적용 대상에 대한 위헌소지 시비 등으로 국회 제출 이후에도 표류를 거듭하다 무려 4년을 허송세월 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 처리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2015년 1월 정무위가 법안을 처리하면서 제재 대상에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포함시키고 당초 권익위가 만든 법안 내용 가운데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쏙 빼버렸다. 다분히 의도된 수정이라는 빈축을 샀다. 국회의원들이 평소 고깝게 여겨온 언론인을 법 적용대상에 넣는 심통을 부리고도 ‘이해충돌 방지’와 같은 자신들과 직접 연관이 있는 부분은 과감히 없애는 꼼수를 보였다.





 ‘이해충돌 방지’가 뭔가. 공직자가 자신이나 가족 등이 관련된 인·허가, 계약, 채용 등 각종 업무에서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규정이 아닌가. 이런 규정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김영란법’에서 제외됐다. ‘쪽지 예산’ 등 지역구 민원 해결을 위한 의원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욕먹을 각오로 두 눈 꾹 감고 거사 수준의 결단을 스스로 내린 것이다. ‘쪽지 예산’이 곧 표인데 이를 포기할 선량이 있을 리 만무하다. 목숨을 걸고라도 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김영란법’은 투명, 청렴 사회로 가는 길을 열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부정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인·허가, 인사개입은 물론 학교입학이나 징병검사 등 14개 업무와 관련해 청탁을 하고 받거나 금품을 수수하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법 적용대상 기관만 4만개가 넘고 공직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인, 교원 등 대상자 또한 4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지간한 기득권자들은 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게 됐다. 행세 깨나 하던 대한민국의 모든 ‘갑’들이 본격적인 수난시대를 맞은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청탁이나 뇌물이 사라지고 회식을 하더라도 n분의 1로 나눠 내는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를 잡는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대 변화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 시행의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공직자가 ‘몸조심’으로 민원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릴 수 있다.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처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불신 사회도 걱정이다. 흔적이 남지 않는 현금 수요가 많아지고 기업의 비자금도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급격한 소비 위축도 우려된다. 선물수요가 많은 농수축산물의 ‘소비절벽’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음식업, 소비재·유통업, 골프산업 등에서 연간 11조6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예상할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법 시행으로 얻는 이익이 손실보다는 더 크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우리 사회가 1등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겪어야 할 ‘홍역’ 정도로 생각하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부정한 청탁과 금품 거래는 공정한 경쟁사회를 왜곡시키고 결국에는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사회악이다. ‘청탁’과 ‘금품수수’는 젊은 인재들에게는 철벽과 같은 진입장벽이다. 인맥과 돈이 자신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는 후진국의 전형이다. 박탈감과 위화감만 낳을 뿐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 계층의 양극화도 따지고 보면 이런 사회의 결과물이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영란법’이 필요한 것이다. 공정 경쟁 사회의 초석이 될 만하다고 본다.





 때마침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은 138개국 가운데 일본(8위), 홍콩(9위)은 물론 대만(14위)과 말레이시아(25위)에도 뒤지는 26위에 올랐다. 3년 연속 제자리걸음이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 공무원의 편파성, 사법부의 독립성 등 공공부문 국가경쟁력은 1년 전보다 뒷걸음질 쳤다. 특히 해외 인재를 유치하거나 국내 인재를 유지하는 능력도 후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정 청탁과 금품 거래로 그들만의 성역을 구축하고 있는 한 해외든 국내든 어떤 인재도 대한민국의 토양에서 튼실한 나무로 자라날 수는 없는 법이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와 같은 편법이 통하지 않는 공정 경쟁 사회라야 국가경쟁력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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