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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성과연봉제, 파업 이유 되나



 ‘밀당’이라는 말이 있다. ‘밀고 당긴다’의 줄인 말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의미한다. 잘해 주다가 못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다소 의도된 행동이면서도 연인 간 더욱 성숙된 사랑을 얻어 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목표하는 바는 다소 다를지 모르나 노사간 협상장에서도 이런 ‘밀당’은 있다. 사측과 노조는 상대에게서 최대한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하겠지만 때로는 밀리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당길 줄을 알아야 접점을 찾고 타결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밀고 당기기가 힘을 균형을 잃고 의도치 않은 쏠림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극단적 결과를 낳는다.    





 최근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노동계와 사측간의 ‘밀당’이 심상찮다. 금융노조와 철도, 보건 등 공공부문이 성과연봉제의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 투쟁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가 올 초 발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서 30개 공기업은 6월까지, 90개 준정부기관은 올 연말까지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도록 한 권고가 빌미가 됐다. 말이 권고이지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다. 이를 어긴 공기업에 대해서는 총인건비 동결과 같은 정부 차원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 노동계의 반발도 정부 의지만큼이나 강경하다.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측을 향해 노동계가 파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젠 ‘밀당’ 수준을 넘어 서로가 당기기만 하니 줄이 끊어질 일만 남았다.


 노사 양측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도록 만든 성과연봉제는 근속 연수나 직급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기존의 호봉제와는 다르게 능력에 따라 급여를 결정한다. 직원들의 업무 능력 및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연봉에 차이를 두는 임금체계다. 같은 연차, 직급이라도 받는 임금은 달라진다. 더 받는 직원이 있으면 그 만큼 다른 직원이 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같은 부서에서 부서원들 간에 임금이 인상, 동결, 삭감 등으로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개인 실적별로 차별화된 임금구조가 바로 성과연봉제이다. 기업들은 이런 성과연봉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일을 열심히 해 성과를 낸 직원에게 임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성과 중심 근로 문화 확산을 통해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하면 성과연봉제가 일반 기업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매년 업무능력이나 성과 여부에 상관없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로 야기되는 고임금의 부담을 덜어주면 기업이 신규 채용에 나서고 청년고용도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다. 조금은 의아한 논리다. 성과연봉제라고 해서 총액임금까지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저성과자 퇴출이 없이는 임금을 아껴 신규 채용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호봉제만 성토하는 꼴이다. 심지어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까지  호봉제에 혐의(?)를 두는 식이다. 호봉제를 마치 기업의 고질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확고한 정부 방침에 노동계도 할 말이 많다. 성과연봉제가 업무 강도를 강화하고 근로자를 개별화 할 뿐 아니라 근로자 간 경쟁을 심화시켜 협력적인 조직문화가 깨지고 나이가 많은 장기근속자의 임금 삭감을 불러올 뿐이라는 주장이다. 성과에 대한 평가가 자칫 근로자 ‘줄세우기’로 변질되거나 저성과자에 대한 퇴출 압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한 상당수 공공기관이 정부 지침을 이행하기에 바쁜 나머지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도 문제를 삼고 있다. 마치 성과연봉제의 장·단점 가운데 정부는 장점만, 노동계는 단점만을 각각 내세워 상대를 윽박지르는 모양새다. 상대의 주장을 일면 인정하고 이해해 주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접점은 기대난망이다.


 그러면 해법은 없을까. 먼저 공기업의 성격부터 파악해보자. 민간이 담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공공재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공기업이다. 사기업처럼 일정의 수익성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사회공공의 복리향상이라는 공공성 사업이 최우선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적자선상에 놓여 있다. 정부를 대신해 국책사업 예산을 집행하는 조직이기도 해 마냥 수익만 추구할 수도 없다. 또한 해고와 체불이 없는 안정된 직장이어서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는 쓴 소리까지 듣는다. 경영상 적자 속에서도 매년 성과급 잔치를 벌여 국민적 비난과 개혁 대상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이런 ‘철밥통’ 공기업의 개혁은 조직 내 개개인간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밖엔 없다는 판단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에 빌미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 명분에서 진정성이 다소 의심되긴 하지만 말이다. 





 공기업의 경영 부실을 온실 속 임직원들의 무사안일 탓만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정치권이나 권력층의 줄을 타고 내려오는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에게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공기업도 무한경쟁대열에서 ‘열외’라는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국민적 인식도 그렇고 외부 경영환경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 적자 경영을 숨길 방도는 더 이상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과연봉제가 파업의 이유가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자칫 내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새로 갈아입을 옷이 어색하다고 해서 낡고 유행이 지난 지금의 옷만 마냥 고집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절박성이 담겨진 파업은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파업은 협상장에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지금의 공공부문 파업이 국민적 시각에서 과연 확실한 명분을 갖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철도파업이 길어지면서 수출 물류 차질과 시민 불편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화물연대마저 무기한 파업을 예고해 놓고 있다. 물류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극단적 선택보다는 협상 테이블에 나와 다시 한번 ‘밀당’을 벌어야 한다. 성과연봉제의 부작용만 볼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내세운 장점도 살펴보고 수용 가능한 부분을 골라내는 배려가 있을 때 ‘밀당’은 가능하다. 큰 틀에서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이고 세부 사항에서 실리는 챙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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