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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때 뺨 제대로 맞는 전경련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줄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옭아 묶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그릇된 말이나 행동이 결국에 자신에게 화(禍)가 돼 돌아올 때 쓰는 말이다. 최근 정치권을 부쩍 달구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연루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딱 이 꼴이다. 경제단체의 본분을 잊은 채 엉뚱한 짓을 저지르다 여론의 뭇매를 신나게 맞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주요 회원인지라 안팎으로 녹록하지 않은 대내외의 경영 환경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를 놓고 밤새 고민하며 토론해도 시원찮을 판에 난데없는 ‘존재의 이유’ 논란 속에 휩싸인 것이다. 전경련 해체압박까지 받고 있으니 말이다.





 전경련을 옭아매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은 말 그대로 아직은 의혹에 불과하다. 그러나 의혹으로만 넘기기에는 정황들이 너무나 구체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실체를 알고 있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도 전경련 주도로 내로라는 대기업들이 갹출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예 금시초문이었다. 혹시 닥칠지 모를 극심한 불경기에 대비해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는 등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는 기업들이 무엇 때문에 한두푼도 아니고 수십억씩을 문화 사업에 쾌척(?) 할 수 있었는지 의심의 눈초리가 쏠릴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문화 사업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실체 그 자체는 이젠 의혹이 아닌 명백한 사실이 됐다.


 기업들의 출연금 내용을 보면 삼성그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4개 계열사의 이름으로 125억원과 79억원을 각각 냈다. 또한 SK가 68억원과 43억원을 내놓는 등 무려 19개 기업이 미르에 486억원, K스포츠에 285억원을 각각 출연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출연금도 많았다. 출연금 입금 시기도 비슷하다. 미르재단은 2015년 10월26일에 집중돼 있고 K스포츠재단은 12월31일에 몰려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산분란하게 거사(?)를 진행한 것 같다. 전경련측의 주장처럼 자발적이라 하기에는 뭔가 수상한 구석이 많다. 더군다나 향후 5년 동안 미르재단은 70억원, K스포츠재단은 285억원을 더 모금할 계획까지 세운 사실이 국정감사장에서 폭로됐다. 사전 협의와 큰 힘의 주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됐던 전경련의 확인 등으로 짐작해보면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출연금 갹출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마치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문화 사업을 전경련 주도하에 집단으로 해 볼 심산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 기업들의 집단 문화 사업이 과연 자발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야 등 정치권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같은 대기업들의 수상한 재단 출연금 갹출과 관련해 최고 권력층을 의심하고 있다. 전경련이 최고 권력의 암묵적 주문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였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장에서도 연일 이런 의혹을 질타했다. 만약 시중에 떠돌고 있는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전경련은 본분을 망각한 처사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창립 55년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권력의 사주를 받아, 한 경제단체 회장의 말처럼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비틀었으니 정경유착의 표상이라는 말을 듣고도 남게 생겼다. 이 뿐이 아니다. 우익단체인 어버이연합에도 5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단체를 지원했을까. 여기서도 자발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투성이다. 전경련이 기업의 이익 대변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포기하고 정치단체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슬 퍼런 정권의 요구에 따라 정치자금을 모아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했던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은 매 정권 때마다 기부금이나 성금과 같은 갖가지 ‘준조세’에 시달린다. 정부주도 국책사업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해야 하고 공익재단 같은 공익적 사업에는 기부금 형태로 발을 담궈야 한다. 정권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다. 새마을성금이나 불우이웃돕기성금, 각종 재해 복구성금 등 각종 성금은 단골 메뉴이다.  오히려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여야 할지를 놓고 이 눈치 저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다. 겉으로는 기업의 자율적 결정이지만 사실상 반강제적이다. 정권에 밉보여 덕 볼 것 없으니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88서울올림픽과 평창올림픽은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런 기업의 준조세 강제 할당에서 전경련은 늘 주역이다. 정권과 기업들 사이에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이것이 사실상 전경련의 고유 역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전경련은 회장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과거 같으면 서로 나설 자리인데 이제는 ‘회장님 찾아 삼만리’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궁여지책으로 ‘연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회장 자리를 채우고 후임 회장을 찾지 못해 현 회장이 불가피하게 연임할 정도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그룹의 위상으로도 충분히 전경련 회장 자리에 오를 만하지만 끝까지 고사했다. 이유는 뭘까. 정권과 전경련 회장 간에는 보이지 않는 ‘핫라인’이 연결된다. 회장 자리에 있는 재벌 총수로서는 자신의 기업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권과의 ‘핫라인’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재계에 대한 정권의 ‘괘씸죄’라도 발동되면 혼자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참으로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득 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판단이 전경련 회장 구인난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경련을 향한 ‘무용론’과 ‘해체론’의 파도가 거세다. 막아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전경련으로서는 일면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항변할 수 있다. 억울해 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권이 힘을 이용해 전경련을 악용한 만큼 모든 잘못을 정치권 탓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침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터졌으니 울고 싶은데 뺨 한번 제대로 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지나간 잘잘못은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이승철 상근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 하지 말고 양심선언을 통해 사실 관계를 속 시원히 밝혀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이다. 이것만이 전경련 해체론의 강풍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다. 계속적인 변명과 은폐 시도는 국민적 반감만 키운다. 잠시는 넘어갈지 모르나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 아닌가. 해체 보다는 이번 기회에 조직을 바꾸고 현실에 맞게 전경련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되찾는 것이 정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과의 묵은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정치권이 더 이상 전경련을 ‘수금 창구’로 인식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대기업 돈은 언제든지 걷어 쓸 수 있는 쌈짓돈으로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전례 없는 결단과 뼈를 깎는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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