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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의혹’으로 본 권력형 비리와 언론

 정치판에서나 간혹 쓰이던 ‘국정농단’이라는 말이 세간의 화두로 등장했다. 농단(壟斷)은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하 편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유해 쓴 말 아닌가. 이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누군가가 끼어들어 전횡을 일삼다 발각이라도 됐다는 말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렵고 믿어지지가 않지만 엄연한 현실 상황이다. 그것도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 현장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이 때문에 전 국민이 패닉상태에 빠졌다. 허탈감을 넘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아침마다 신문의 톱기사 자리에 자랑스럽게(?) 오르고 있는 ‘최순실’이 바로 국정농단의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한 개인의 일탈인 스캔들 정도로만 생각했다. 의혹이 양파껍질처럼 연이어 터져 나와 ‘최순실 의혹’이 되더니 이제는 ‘최순실 게이트’로 확대됐다. 경악할 일이다. 대통령의 권세를 등에 업고 위세를 떨친 전형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이자 권력형 비리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누가 여우이고 누가 호랑이인지 분간이 안 된다. 최순실의 위세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을 넘은 흔적까지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하다. 국정농단을 넘어 국기를 뒤흔들었다. 나라 망신이다 





 최순실 씨는 그냥 돈 많은 서울 강남의 동네 ‘아줌마’에 불과하다. 좋게 봐줘 거센 치맛바람 꽤나 날리는 한 학생의 학부모다. 어떤 공직이나 단체의 직책도 없다. 그런데 초특급 ‘갑질’을 일삼고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학 명문 여대인 이화여대를 딸의 편법 입학과 학사 개입으로 쑥대밭을 만들었다. 개교 130년만에 교수가 시위에 나서고 총장까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19개 대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을 단숨에 거둬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관계자 증언을 통해 기정사실화 됐다. 재단 설립과 관련해 나돌던 갖가지 의혹이 하나같이 최순실에 초점이 맞춰져 가는 모양새다.  


 최순실 의혹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 연설문 사전 열람이다. 종편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서 ‘통일대박’의 메시지를 던진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 등 무려 44건의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하고 수정한 흔적이 발견됐다. 대통령 연설문은 국정의 향후 운영 방향을 담고 있어 발표될 때마다 국내외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수많은 청와대 참모진을 제치고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한 강남 아줌마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니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금방 드러날 일인데도 국회에서 봉건시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알고 그랬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자리하나 차지하고 있는 노인네 같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의 동선도 그대로 사전 노출됐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국제행사일정을 상당 시간 전에 꿰차고 앉아 행사에 나갈 때 입을 의상을 일일이 골랐다고 한다. 국가수반인 대통령의 일정은 경호상 초특급비밀로 취급되는데 아무런 제제 없이 한 아주머니에게 노출된 것이다. 이 뿐 아니다. 국가간 정상회담 자료, 개성공단 폐쇄가 담긴 정부부처 업무 자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대통령 보고 등이 발표 전에 최 씨의 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를 보면 최 씨가 외교, 국가안보, 인사 등 국정 전반에서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청와대가 마치 두 대통령을 모신 것처럼 보인다. 청와대 문서유출 혐의로 처벌 받았던 박관천 경정의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라는 말이 맞았다.


 최 씨의 이런 국정농단 징후는 박 대통령의 취임 초부터 심심찮게 불거졌지만 그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 사정기관인 검찰 등은 하나 같이 의혹은 의혹일 뿐이라며 공론화는커녕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다. 그저 이런저런 눈치 보며 최고위층의 심기를 건들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최 씨 문제를 거론하면 마치 충성심 경쟁이라도 벌이려는 듯 앞 다퉈 국정농단 운운하며 청와대의 ‘2중대’ 마냥 상대를 몰아세웠던 것이 고작 한 일이다. 입만 열면 애국을 부르짖던 그들이 아닌가. 모두 가식이었다. 금배지의 자존심마저 저버린 채 오로지 출세와 자리보존만이 그들의 목적이었음이 드러났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쁜 민초들은 정치마저 이 꼴이니 그저 답답한 마음뿐일 것이다. 


 이런 답답함을 풀어 준 것은 언론이다. JTBC의 용감한 보도가 없었으면 최 씨의 국정농단은 이번 정권이 끝날 때까지 묻히고 오히려 계속해 기승을 부렸을지 모른다. 기득권 보수 언론인 KBS등 공중파들이 용기가 없어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종편들은 연일 의혹을 제기하는 등 언론의 고유 기능을 발휘했다. 검찰도 하지 않는 일을 마치 수사하듯이 최순실의 흔적을 찾고 다녔다.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취재경쟁이 나라를 살렸다. 그나마 길을 잃은 국정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권력형 비리는 속성상 힘의 논리에 의해 덮여지기 마련이다. 최고 권력과 연결됐다면 까발리기가 더더욱 어렵다. 이를 들춰낼 수 있는 수단은 언론뿐이다. 이런 점에서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파일 보도는 역사에 기리 남을 만하다. 정권 ‘해바라기’ 기득권 언론에 큰 자극제가 되고도 남을 만하다. 


 비선 실세 최 씨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여론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랜 인연으로 한때 연설문의 일부를 최 씨로부터 자문 받았다고 하나 수많은 참모진을 제쳐두고 한 필부(匹婦)의 도움을 굳이 받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상식의 잣대로는 이해 난망이요 미스터리다. 책임자 처벌 등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없었다. 사과문에서 진심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최순실 의혹’으로 돌아가는 시국이 심상찮다. 이화여대와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를 필두로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시민들까지 들고 일어날 움직임이다. ‘탄핵’이니 ‘하야’라는 말까지 쉽게 입에 담는다. 배신감에 대한 분노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상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고는 하나 어떤 속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검찰의 뒷북 수사를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최 씨를 하루라도 빨리 불러들여 그동안의 의혹을 소상히 밝히고 국민께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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