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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뻗치기’

 취재기자들 세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뻗치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는 ‘무작정 기다린다’는 뜻이다. 반드시 취재를 해야 할 사람이 공개적인 인터뷰 등을 거부하며 요리조리 피해 다닐 때 이 사람을 어떻게든 만날 요량으로 확률이 높은 특정 장소에서 마치 잠복 형사처럼 무작정 기다릴 때 이 말을 쓴다.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검찰청사 앞 취재진의 모습도 ‘뻗치기’다.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큰 주요 인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면 조사를 마치고 언제 귀가할지 모르지만 청사 앞에서 몇 시간이 되던 무작정 기다린다. 시쳇말로 다른 경쟁사 기자에게 ‘물’을 먹지 않기 위해서다. 반드시 성과를 거둔다는 보장도 없어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모든 기자들이 갈망하는 특종도 할 수 있어 ‘뻗치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종의 어떻게 되겠지 하는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강한 말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같은 ‘뻗치기’를 하고 있다. 검찰 수사내용과 언론 폭로를 통해 실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됐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오랜 인연을 확인했고 연설문 사전 유출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부탁해 일어난 일임을 밝혔다. 피의자 신분이 된 그의 측근들 입에서도 대통령의 의중과 지시에 따라 저지른 일임을 실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결국 두 차례에 걸친 대국민 사과문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최순실이 그의 측근을 끌어들여 어떻게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고 청와대를 무슨 이유로 제집 드나들 듯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청와대 수서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이 최순실의 수족이 돼 국정농단에 조력자가 된 이유 등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다. 그저 아랫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사이 저지른 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대다수 국민은 이런 박 대통령의 책임 회피적 사과와 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래서 두 차례에 걸친 대국민 사과 또한 그저 시간벌기용 쯤으로 여긴다. 첫 번째 사과문은 1분30초로 짧았고 그것도 녹화로 진행됐다. 두 번째는 그나마 9분여로 다소 길어지고 생방송으로 발표됐으나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생략돼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종전 스타일에서 하나도 바뀌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찔끔찔끔 사과다. 연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퇴진 목소리를 들은 둥 마는 둥 하는 자세다. 원체 바람 잘날 없이 대형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대한민국인지라 시간을 벌어 버티다 보면 성난 민심도 사그라들지 않겠냐는 요행을 바라며 ‘뻗치기’ 하는 것 같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순실 게이트’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국정까지 마비시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고작 서울 강남의 돈 많은 아줌마에 불과한 민간인 최순실이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을 빌미로 호가호위 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한 전횡이 박 대통령의 생각처럼 대수롭지 않는 일일까. 의혹은 까도 까도 양파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연이어 언론을 통해 터지고 있는 최순실 관련 의혹을 보면 하나같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설마’ 하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순실은 딸의 이화여대 편법 입학과 함께 대통령 연설문 등을 사전에 입수, 수정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기획하고 19개 대기업을 상대로 774억원을 강제 모금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스포츠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관련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고 약점이 있는 대기업들만 골라 돈을 뜯어내려 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심지어는 최순실과 그의 딸이 단골로 다니는 성형외과 병원 원장을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동행토록 하고 이 병원이 만든 화장품을 청와대 설 선물세트로 만들어 주는 뜻 모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병원의 해외사업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은 청와대 수석은 지시사항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최순실의 가족이 이용하던 초호화 건강검진병원에서는 박 대통령의 주사제를 대리로 처방받은 의혹까지 폭로됐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신변 경호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과 함께 광고회사 강탈을 시도했고 2018 평창올림픽 때 한몫 챙기기 위해 까다롭게 구는 조직위원장을 문체부를 움직여 아무런 이유 없이 교체하는가 하면 올림픽 이후 사업권 확보를 위한 로드맵까지 만들었던 것 같다. 이처럼 최순실은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협조를 하지 않으면 보복을 서슴지 않았고 자신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어떤 숨은 거래가 깔려 있는지는 모르나 무리를 해서라도 챙겨주는 은혜를 베풀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일들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펼쳐진 꼴이다. 이게 나라냐 싶다. 국정에 밤낮 없이 매달려야할 청와대 경제수석과 문체부 장·차관이 최순실의 하수인이자 조력자가 돼 움직인 것은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지시가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배 채우기에 혈안이 된 측근을 챙기지 못한 것 또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원칙과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으로 알고 지지했던 사람들은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떤다. 더군다나 최순실 일가가 갖고 있는 축적과정 불명의 수천억 재산 앞에서 상실감과 무력감을 호소한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은 좌초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호에 타고서 좌절감에 빠져 있다. 박 대통령은 오랜 정치인으로서 일말의 애국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 국민들에게 더 이상의 분노와 상실감, 무력감, 좌절감을 안겨 줘서는 안된다. 광화문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수십만 인파의 ‘퇴진’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민심을 잃은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다. 이런 만큼 정치적 흥정으로 시간을 벌며 버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됐다고 생각한다. ‘뻗치기’를 해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불교경전 화엄경의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는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력 회복을 위한 결단만이 남았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광화문광장이 수십만이 아닌 수백만명으로 채워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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