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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의 고리 끊을 수 없나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이 벌인 잇속 챙기기로 시작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보면 최순실은 오로지 사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구석구석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의 갖은 비리와 ‘갑질’을 저질렀다. 문화계를 주무르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등 정부 인사에 개입하는가 하면 2018 평창올림픽과 관련된 이권을 친조카에게 챙겨주기 위해 조직위원장을 갈아치운 정황까지 드러났다. 딸을 위해서는 승마대회 승부조작을 서슴지 않았고 대통령의 ‘나쁜 사람’ 발언을 하도록 해 문체부 국·과장의 옷을 벗긴 장본인이다.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 딸의 이화여대 편법 입학, 단골 병원 원장의 대통령 해외순방 동행 배려 등 국정농단을 넘어 교육계와 스포츠계, 문화계까지 초토화시켰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일탈로 전개돼 가던 이런 ‘최순실 게이트’는 그 의혹의 중심에 박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53개 대기업이 774억원을 출연해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이 당초에는 최순실이 혼자서 대통령을 팔아 설립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박 대통령까지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등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검찰조사에서 밝혀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작년 7월과 올해 2월 쯤에 재벌기업 총수들을 10여 차례나 독대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 독대를 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뻔할 뻔 자 아닌가. 독대 시기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를 짐작 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 정치사의 고질병인 재벌과 최고 권력 간의 전형적인 ‘정경유착(政經癒着)’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검찰은 최순실의 이권 챙기기에 박 대통령이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올해 2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 총수들을 조사해 보니 독대에 앞서 열린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 때 재벌 총수들이 사실상 최순실 회사인 광고기획사 플레이그라운드를 소개하는 서류를 받았고 VIP(대통령) 관심 사안이니 광고를 챙겨 주라는 식의 말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공모 사실이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올해 11억원 규모의 광고를 최순실 회사에 발주했다고 한다. 최순실은 이후 플레이그라운드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청와대 정호성 전 비서관과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현대차에 압력을 가해 딸 정유라의 초등학교 동창 부모가 운영하는 납품업체에 9억원 가량의 일감을 준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최순실이 주문하면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움직여 기업을 압박하는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다. 대통령이 끼인 역대 최강의 정경유착인 셈이다. 대통령이 이런 일에 앞장섰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것도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겠다고 해 뽑아준 대통령인데 말이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 일대에 100만개의 촛불이 켜진 이유를 알만하다.





 정경유착은 정치권력과 재계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마디로 양 집단 간의 공생이고 암약이며 야합 아닌가.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제 아래서 기업은 권력에 줄을 대기 위한 노력을 관성처럼 한다. 기업 현안 해결을 권력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비자금이 필요하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불법을 저지른다. 권력 또한 권력을 유지하고 권좌에서 내려 왔을 때를 대비해 자금을 줄기차게 모으려는 습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과 권력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기업과 권력의 고리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닌가.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정경유착은 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박근혜 정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의 독대에서 기업의 현안과 민원을 받았다는 것이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이다.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좀 더 수월하게 기업으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금을 받아낼 요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재계 서열이 무시된 채 대형 민원성 현안 등 약점이 있거나 정권의 혜택을 본 기업들이 대통령의 독대 대상이 됐다. 철저히 계산된 수금 방법이다. 기업으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절대 권력자에 줄을 대고 싶은 판에 대통령과의 독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총리나 장관, 청와대 수석들과 거의 독대하지 않아 지탄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인데 기업 총수들과 스스럼없이 독대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독대 기업들은 단순히 돈만 뜯긴 게 아니다. 오히려 얻은 것이 많았다. 실제로 200억원이상을 출연한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도움을 받았다. SK그룹과 CJ그룹의 총수 사면, 한화그룹의 서울시내 면세점 면허 획득, 롯데그룹의 회장의 비자금 수사, 불구속 기소 등을 보면 정경유착의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런 권력과 민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던 것 같다. 재단 출연금 외에 과외 돈으로 롯데로부터 70억원을 받았다가 그룹 압수수색 하루 전에 급히 돌려주는 일이 있었다. 삼성으로부터는 2020년 도쿄올림픽 승마 유망주 육성을 명분으로 뜯어낸 35억원이 대통령의 아바타 권력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위해 말을 사고 호텔·주택을 매입하는데 쓰여진 사실이 검찰의 자금 추적 과정에서 드러났다. 심지어는 기업과 수수 액수를 놓고 흥정을 벌인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맞나 싶다.

 정경유착은 겉으로는 기업과 권력의 단순한 ‘윈-윈’ 전략으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폐해가 크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기업이 권력에 가져다 바치는 자금은 준조세나 다름없다. 기업의 상품 경쟁력을 위해 원가절감과 기술 개발에 쓰여야 할 돈이다. 이런 준조세의 부담을 안고도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없다. 경쟁력을 스스로 까먹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30대 그룹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임직원 1만4천명을 줄였고 절반이 넘는 16개 그룹의 매출이 작년보다 감소했다고 한다. 극심한 불황에 기업들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초긴축 경영에 들어가 있거나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런데도 경영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비영리재단에 수십억씩을 출연하는 기업들을 이해할 수 있겠나. 민원성 현안 해결이라는 달콤함 때문에 정치권력과의 동거라는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만들어 진다. 기업은 눈앞 이익보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세우고 지속경영을 펼치는 것이 무한경쟁시대에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제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달콤함에만 빠져서는 안된다. 권력과의 유착은 발목의 족쇄나 마찬가지다. 반드시 풀어야 할 고리이다. 기업에 비해 절대 ‘갑’인 정치권력 또한 국익을 위해 기업과의 고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갑’이 제자리를 잘 지킨다면 ‘을’인 기업 또한 감히 그 자리를 넘보지 않을 것이다. 공직사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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