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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 청문회 ‘무용론’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특검만큼이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국회의 국정조사다. 검찰, 특별검사 수사와는 별도로 국회 차원에서 전대미문인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밝혀보기 위한 것이다. 어떤 공직도 가져본 적이 없는 최순실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 개인이 저지른 국정농단의 실체 접근을 위한 시도 차원이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목적도 갖고 있다. 더군다나 비선 최순실의 공범으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로 민심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가운데 진행되는 만큼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는 언론 등을 통해 수많은 의혹들만 쏟아지고 있을 뿐 진실이 속 시원히 규명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변명으로 일관해 민심의 분노만 키우고 있고 검찰 수사마저 특검으로 수사라인이 바뀌면서 법적 규명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이러니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겠나. 생각 같으면 당장 어떻게 라도 하고 싶지만 법치국가의 국민답게 많이 참고 또 참는다. 촛불을 켜고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는 것으로 이런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 고작이다. 국민들이 이번 국정조사에 거는 기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감과 다르지 않다.





 국정의 특정 사안을 조사하는 국정조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청문회다. 전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고 관련 증인이 줄줄이 불려 나와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모든 국민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또한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기회여서 건수만 있으면 열고 싶어 하는 것이 청문회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 조사 특위 의원들의 질의 태도와 무성의한 증인의 답변은 늘상 지적되는 사항이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 또한 별로 달라 보이지가 않는다. 예상대로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 벌써부터 알맹이 없는 ‘부실’, ‘맹탕’ 청문회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전 청문회처럼 의원들의 호통과 황당한 질의, 증인의 불출석, 성의 없는 대답은 여전했다. 질문은 길고 증인의 답변이 짧은 것도 똑같다. 미국처럼 질문은 짧게 해 증인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도 말이다. 말을 길게 할수록 TV화면에 잡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증인의 답변을 예, 아니오로만 제한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제한된 심문 시간에 질문자 자신의 얼굴을 가능한 한 카메라에 많이 잡히도록 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한다.





 재벌급 기업의 총수 9명이 한꺼번에 증언대에 선 2차 청문회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내로라는 재벌기업 총수들이 좋지 않은 일로 한자리에 모인 자리다. 재벌 총수들의 청문 증인 채택은 조사 청문회가 처음 도입된 지난 1988년 11월 ‘5공비리 청문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와 이번 청문회는 28년이라는 세월의 차이에도 거의 판박이다. 마치 재산 상속과 함께 청문회 출석도 대물림된 것 같다.


 28년전 ‘5공비리 청문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 LG(당시 럭키금성) 구자경 회장, 대우 김우중 회장, SK(당시 선경) 최종현 회장, 한진 조중훈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 등으로부터 509억원을 강제 모금해 일해재단을 세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청문회 또한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주도로 19개 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을 거둬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든 의혹과 관련된 것으로 매우 닮았다. 돈을 낸 기업수와 모금 액수만 다를 뿐이다.


 특이한 것은 최순실 청문회 재벌 총수 증인 9명 가운데 6명이 30년 가까운 오랜 세월 후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다시 증언대에 섰다는 사실이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현대의 정몽구 회장, LG의 구본무 회장, SK의 최태원 회장, 롯데의 신동빈 회장, 한진의 조양호 회장이 바로 문제의 주인공들이다.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않아도 될 일을 재벌 2세들이 그대로 배운 셈이다. 물론 돈을 달라고 한 사람과 준 사람 가운데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이것 또한 사회적 병폐인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음을 입증하는 현장이어서 씁쓸하다.





 두 청문회가 다른 점도 있다. 5공 청문회 당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스타 정치인의 등장이 있었다.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핵심을 파고드는 송곳 같은 질문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강압에 의한 거액 출연’ 발언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청문회는 TV나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데도 이렇다 할 스타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실망감만 안겨 주고 있다. 국회의원의 자질이 점차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최순실 청문회 심문에 나선 의원들 대부분은 질문 내용이 언론 보도와 검찰의 관련 피의자 공소장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만큼 사전 준비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럴 바에야 현재 진행 중인 특검의 수사를 기다려보면 될 일 아닌가. 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지 이해가 안 간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재벌 총수들 앞에서는 무한정 공손해지는 모습에 국민들은 어떤 생각일까.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의 경우 재벌총수 청문회 도중 몇몇 총수의 이름을 거명하며 고령과 지병 등 건강을 걱정되는 만큼 조기 퇴청하도록 하자고 제안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를 봤다.





 또한 증인의 답변도 ‘모르쇠’가 전부다. 재벌총수들은 그들의 친목단체인 전경련에서 대책 회의라도 하고 증언대에 선 것 같다. 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하나같이 대가성은 없었다는 말만 했다. 물론 이를 시인할 경우 뇌물죄로 처벌 받을 수밖에 없는데 바른 말을 할 리 만무하다. 답변 내용이 뻔할 뻔 자인데도 재벌총수들을 불러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단체 사진이라도 찍을 생각이었을까. 다른 증인들도 마찬가지다. ‘재판 중’이라거나 ‘검찰에서 진술했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고 있다. 의원들도 이런 증인의 동문서답형 답변에 말려들어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것이 고작이다.


 증인의 출석 거부도 문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 출석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하는 꼼수로 청문회 출석을 회피했다. 위증 또한 막을 방법이 없다. 관련법에 따른 처벌 규정이 나름 있으나 벌금형이 전부인지라 실효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괜한 기대감만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 청문회의 실효성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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