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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손질…백일아기 성형 하려는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 100일을 넘겼다. 이 법은 공정사회 구현과 국민과 함께 하는 청렴 확산이라는 취지를 담고 2016년 9월28일 역사적인 출발이 이뤄졌다. ‘클린 코리아’를 내건 야심찬 공직사회 정화법이다. 그런데 불과 시행 100일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법 손질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법 시행이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성급한 것 같다. 마치 100일 된 아기에게 얼굴성형 수술하겠다고 덤비는 꼴이나 다름없다. 아기의 얼굴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는 무모함이 엿보인다.


 법 시행의 주요 대상인 정·관계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김영란법’ 시행 100일인 지난 1월5일 정부 업무 보고에서 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 검토를 주문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거들었다. 보완 방안 마련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다 관련 부처와 개정안 협의로 방향을 선회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농·수·축산물의 예외 인정’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아마도 뭔가 불편한 구석이 많았던 것 같다.





 정부부처와 정치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법 개정의 목소리가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 시행으로 음식업, 화훼업 등의 매출 감소 현상과 소비위축이 본격화되면서 서민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면 이해가 된다.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실제로 ‘김영란법’이 시행된 작년 9월의 음식점과 주점의 매출이 1년전 같은 달보다 2.3%가 줄어 감소세로 반전됐다가 11월엔 3.5%로 감소폭이 커졌다. 화훼업의 도매거래량은 13%나 줄고 이로 인한 고용 감소도 두드러졌다고 한다. 수치상 법 시행의 후유증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인 만큼 타도 ‘김영란법’을 외칠 만하다.


 그러나 작금에 보이고 있는 소비 위축의 혐의를 ‘김영란법’에만 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 즉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은 아닐까. 근래 우리 경제의 상황을 한번 보자. 2016년에 청년실업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치를 경신하며 10%에 육박했고 해운업과 조선업이 불황의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대규모 감원에 들어가면서 실업자 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가계부채 또한 1천300조원 시대를 맞아 그 여파를 염려해야 할 지경이다. 벌이가 시원찮고 금융비용 부담에 허덕여야 하는 서민들이 소비에 나설 형편이 아니지 않는가. 이 정도면 명백한 국가 경제 운영 잘못의 책임이 있다. 이를 제쳐두고 괜한 ‘김영란법’ 탓만 하는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





 그리고 ‘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된 비용의 한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음식값 3만원은 2003년에 만들어진 '공무원 행동 강령'에 근거한 것으로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상한선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판단이라고 한다. 공직자들은 법 시행 전까지 3만원짜리 고급 음식만 먹었다는 말이다. 도대체 뭘 먹기에 한 끼에 3만원도 모자란다 말인가. 또한 경조사비는 이미 우리 모두에게 부담을 줄 정도의 액수가 된데다 성의를 빙자해 뇌물성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모두 먹고 사는 것조차 빠듯한 서민들에게는 마치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공직자와 민원인은 때에 따라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가 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경우 발생하는 비리 때문에 ‘김영란법’과 같은 법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공직자가 어떤 이유로든 민원인을 별도 장소에서 만나서는 안된다. 꼭 필요한 회동이면 공직자가 그 비용을 대야 마땅하다. 공직자가 접대를 받는 것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공직자의 갑질이다. 공정한 사회는 공직자가 ‘을’의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급여와 신분 보장은 국민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으라는 준엄한 주문이다. 공직자가 접대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명절 때마다 국회의원 회관에 택배 물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언론을 통해 봤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국회의 모습과 국회의원들의 자질을 생각하면 이를 향한 국민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애를 쓰는 국회의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런 선물을 보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도 정치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데도 선물의 상한액 조정을 입에 담는다면 의도가 분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일반 국민들이 ‘김영란법’으로 느끼는 불편은 없다. 불편을 느끼는 곳은 정치권과 공직사회 뿐이다. 이미 우리의 국가경제규모는 세계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둘 정도가 됐다. 요식업계와 화훼 농가, 축산 농가 등에서 일부 타격이 있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시행중인 법을 함부로 손댈 일은 아니다. ‘김영란법’은 더욱 그렇다. 손을 대기 시작하면 법의 근본적 취지가 크게 훼손될 뿐 아니라 또 다른 외부 민원을 자극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명절 때’나 ‘농수축산물’ 등과 같은 예외 규정을 두는 것 또한 위험한 발상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는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소비 위축의 근본적 원인이 정말로 ‘김영란법’에 있는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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