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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이 던져 준 교훈



 한진해운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법원은 최근 그동안 진행해온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를 중단하기로 결정해 2주간의 항고기간이 끝나는 이달 17일이면 파산선고가 내려진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첫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한 것이 1977년이니까 꼭 40년 만에 우리나라 해운역사 의 한 장을 장식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기업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반사이긴 하나 한진해운의 몰락은 나름 아쉬움이 많다. 그래도 한국 해운의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그동안 우리 해운업계를 이끌어 오면서 물류 한국의 상징이자 산 역사였다. 출범 2년 만에 중동항로와 북미서안 항로를 개척한데 이어 1983년에는 북미동안 항로를 개설하는 등 한국 컨테이너 업계의 새 역사를 빠르게 써내려갔다. 1986년에는 불황의 여파로 적자가 누적돼 한때 경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발 빠른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국내 1호 선사인 대한상선(대한선주)을 인수하면서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선사로 발돋움했었다.





 이후에도 몸집 키우기는 멈출 줄 몰랐다. 1992년 국내 첫 4천TEU급 컨테이너선 ‘한진오사카호’ 출범, 미국 시애틀·롱비치 등 주요 항만의 전용 터미널 확보, 거양해운과 독일선사 DSR-세나토 인수 등과 같은 공격적인 경영이 먹혀들었다. 창업주의 삼남인 조수호 회장의 2세 경영체제에서도 경영상 기복은 없었다. 오히려 5천75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순항했다. 물론 해운업의 호황세도 한진해운의 거침없는 경영 행보를 도왔다.


 그러나 위기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야기됐다. 2세 경영체제가 본격화되던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였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대타로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공교롭게도 해운업 침체의 높은 파고까지 겹쳐 부실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들었다. 유동성 위기는 심화됐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까지 나서 경영 정상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해운업의 침체에 결정타를 맞고 회생불능 상태로 내달은 것이다. 회생절차 돌입에 이은 빚잔치는 누구도 예상 못했던 일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지만 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 된 것이다. 






 세계 7위 선사 한진해운의 부침(浮沈)은 해운업 경기와 궤를 같이 해왔다. 첫 번째 경영위기 때도 그랬고 이번 경영위기 또한 장기간에 걸친 불황이 주요 원인이다. 출범 10년 만에 맞은 첫 위기를 잘 극복해 30년을 견디다가 부채비율 1천%의 부실기업으로 결국은 주저앉았다. 기업은 업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불황의 파고를 어떻게 넘는냐는 것은 오로지 기업 경영진의 몫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과 스톡옵션 등을 부담하면서 최고경영자를 기업에 영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만큼 경영 능력이 기업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40년을 잘 버텨온 기업의 부실을 전적으로 경영 잘못 만으로 떠넘기는 것 또한 어폐(語弊)가 있다.


 한마디로 한진해운의 몰락은 오너의 경영능력 부재에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 해운업 불황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빚어진 결과다. 부실의 화근이 된 최은영 회장은 남편의 사망으로 경영권을 졸지에 넘겨받았을 뿐 어떤 경영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2008년 당시만 해도 해운업은 호황세였다. 이에 경영진은 장기간 이어질 호황세에 대비해 용선료가 높아 질대로 높아진 상태에서 10년 장기계약을 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일정기간 호황 뒤 불황이 찾아오는 업황의 사이클을 무시한 명백한 오판이었다. 최고경영자의 경영 미숙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영능력에 의한 위기 극복 기회를 놓친 셈이다.






 정부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한진해운이라는 거대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문제였다. 수도 없이 많은 기업 가운데 하나로 한진해운을 본 것이 문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물류는 우리의 국가안보나 마찬가지다. 기업의 수출은 물류에서 승부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자국의 메이저급 해운 선사가 있고 없고는 수출경쟁력에서 천지 차이다. 세계 메이저 선사인 한진해운이 국가 수출에 기여한 공은 어마어마하다. 그냥 더 큰 부실이 오기 전에 청산하려는 정책 당국의 안이한 생각이 40년간 다져온 국가의 기간산업망인 해운물류 네트워크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은 외면한 채 금융 논리만 앞세우다 일을 그르쳤다. 국가경제를 봐서라도 한진해운은 살렸어야 했다.


 한진해운의 공중분해가 남긴 후유증은 크다. 국내 해운업계 운송능력은 반 토막이 났다. 현대상선 등이 보유한 컨테이너선은 고작 68척이다. 내년까지 21척을 추가 확보한다 해도 100척이 채 안된다. 세계 1, 2위의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600여척, 480여척과 비교하면 급이 틀린다. 뿐만 아니라 국내 1위 선사가 된 현대상선은 국제해운동맹에 정식 가입조차 못해 앞날조차 기약할 수 없는 지경이다. 우리의 수출기업이 겪을 고통은 불을 보듯 뻔하다. 파산으로 인한 실직자가 부산에서만 3천여명, 전국으로 최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은 외국선사들 만 반사이익으로 배를 불렸다. 





 정부는 현대상선으로 하여금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토록 해 세계 5위의 해운사로 키우겠다고 했다. 특정 사기업 지원 논란이 두려워 청산 절차를 밟았던 정부가 무슨 명분으로 공기업도 아닌 현대상선을 키울 요량인지 이해가 안된다. 더군다나 현대상선은 아직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는 단계인데도 말이다. 한진해운과 같은 새로운 해운물류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시간과 노력, 비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있는 것이라도 잘 지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것이 한진해운의 파산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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