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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파면’ 단상(斷想)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의 뜻에 부응하여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낼 것입니다. 부강하고,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가진 제18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거대한 포부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첫 여성 대통령인데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서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라는 새 기록의 주인공이다. 아버지 밑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배운 만큼 그 누구보다도 국가 최고 지도자의 책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는 국민적 믿음과 열망을 갖고 큰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여성인 만큼 국민들 마음을 잘 헤아리고 보듬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미혼인지라 가족들의 비리 또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잘 차단할 것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은 그의 임기 4년만에 물거품이 됐다. 탄핵으로 헌정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이 그에게 더해졌다. 결국 국민행복이 아닌 ‘불행시대’를 만든 실패한 대통령이 된 것이다.






 ‘2017년 3월 10일’은 이제 우리에게 역사적인 날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역사적인 판결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선고에서 21분간에 걸쳐 헌재 재판관들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낭독한 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재판관 8명 전원 일치의 탄핵 인용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탄핵에 대한 어떤 반대 의견도 첨가되지 않은 완벽한 결정이었다. 엄동설한 광화문 광장을 달구었던 촛불이 만들어 낸 새 역사다. 국민의 승리였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과연 갖고 있는지를 살펴봤다고 했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했다. 통치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민심과 다르지 않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우리 국민 모두 박 전 대통령에게 속았다. 갖가지 의혹과 오해를 불식시키겠다며 달랑 둘 밖에 없는 동생들까지 멀리하더니 난데없는 ‘비선실세’를 두고 있었다. 그는 40년 지기 ‘최순실’을 곁에 두고 사소한 일들을 시킨 것이 국정을 농단할 정도의 괴물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피보다 진한 물이 없다지만 그렇지 않았다. 피를 나눈 동생들보다 최순실을 더 믿었던 것 같다. 최순실은 이런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최순실에게 있어 대통령은 그저 이권을 챙기는데 있어 더 할 나위 없는 조력자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가 박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순실이 사익을 위해 일을 벌이면 뒤처리는 박 전 대통령이 맡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1명의 대통령을 뽑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1’이었다. 그런데 ‘아바타’ 대통령의 위세가 더 대단했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국민적 분노와 배신감은 당연한 결과다.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을 경제공동체이자 공범이라고 단정했다. 53개 대기업을 압박해 뜯어 낸 774억원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었다. 증언에 의하면 이 재단은 박 전 대통령의 퇴임 후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고 최순실에게는 돈벌이 수단이었다. 한수 더 떠 삼성그룹은 최순실에게 군소리 한번 하지 않고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쾌척(?)했다.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권력에 돈이 간 것은 분명하다. 상식적으로도 그냥 돈을 줬을 리가 만무하다. 기업들이 무슨 이유로 민간인 최순실에게 ‘묻지마’ 선심을 썼을까.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이 한 몸인 것을 감지한 것이 분명하다. 돈을 냈거나 준 기업들은 비슷한 시기에 기업의 숙원인 경영승계와 면세점 면허 취득, 사면 등이 이뤄졌다. 검찰은 이를 뇌물의 대가로 보고 있다. 이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기업들의 선의이고 모두 국정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돈 한 푼 받지 않았는데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는 강변도 서슴지 않는다. 누가 봐도 수상한 거래가 분명한데 대통령만 딴소리다. 철석같이 믿은 우리가 어리석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한 일은 있다. 눈치 9단의 ‘벙어리’ 장·차관과 참모진을 양산했다. 덕택에 괜히 나서지 말고 시키는 일만 잘하자는 복지부동의 측근들이 포진했다. 반면 눈치 없이 나섰다가는 바로 눈 밖이었다. 류진룡 문체부 전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바른 소리를 했다가 그래도 국무위원인데 해외출장 중에 해임되는 수모를 당했다. 또 다른 눈치 없는 공무원도 있었다. 최순실의 딸 승마대회 성적 파문과 관련한 의혹을 현장 조사한 문체부 실무 국장과 과장은 하루아침에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보직해임 후 사직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대통령이 정부부처 국·과장 인사까지 챙긴 것이다. 최순실과 친분만 있으면 은행 임원이 되고 기업인 출신의 외교 문외한도 대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의 힘(?)이다. 청와대 ‘보안 손님’을 만들고 ‘비선의료진’까지 두고 있었다. 국가안보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최순실을 위한 최순실’의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정치인이었다. 비정상의 정상화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련의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면서 보인 그의 행보는 완전 딴판이다. 약속을 밥 먹듯 뒤집었다. 검찰과 특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하고도 온갖 핑계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는 또 끝까지 불통이었다. 재임 내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남의 말 듣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기자회견은 질의응답 없이 진행됐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국가적 대재난이 발생했는데도 청와대 내에서 그의 얼굴을 본 비서진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대응을 두고 말이 많다. 대면 보고와 전화가 주변 참모들과의 소통수단이고 일상이었으니 민심을 제대로 읽었을 리가 만무하다.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는데도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심지어는 태극기집회 인원이 촛불의 2배를 넘는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탄핵이라는 생사가 달린 결정이 내려져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도 측근과의 소통은 없었던 듯했다. 아마도 들끓는 민심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뒤처리도 깔끔하지 못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20명 가까이 구속되고 30명이 기소됐는데도 여전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한다. 심지어는 완전히 얼토당토 않는 일로 자신을 엮었다고 했다. 뭔가 기획된 느낌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탄핵 기각을 끝까지 믿었던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비율이 80%에 달하는데도 혼자만 태극기집회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그의 말처럼 최순실과는 어려울 때 가까이서 도와준 사소한 인연이라 치더라도 최측근이 국정을 농단했다면 그 책임은 없다는 말인가. 그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다. 국민만을 바라보겠다던 과거 그의 발언은 모두 허언으로 느껴진다. 우리 모두를 아연실색케 한 대통령 대리 변호인단의 막말과 협박성 발언도 책임질 일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 후에도 일언반구 한마디 말도 없었다. 승복은커녕 대국민 사과 메시지 하나 없이 사저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침묵뿐이다. 기껏 내뱉은 말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이다. 자신 때문에 국론이 분열됐는데도 일말의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우리가 이런 꼴 보려고 그를 선택했는지 자괴감이 드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역대 대통령 가운데 4번째로 검찰에 출두해 수사를 받는다. 앞서 특검 조사 때와는 달리 의외로 소환에 제때 응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그나마 국민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검찰을 통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길 바란다. 그리고 필요하면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이것이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이다.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대한민국 여성인 것이 부끄럽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래도 국내외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을 당사자이면서도 자신의 할 일에 파묻혀 머리 위 ‘헤어롤’을 빼는 것조차 잊은 채 그대로 출근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아름다운 실수’를 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같은 여성 지도자가 있어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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