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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가맹 본사-점주간 ‘상생 틀’ 마련이 우선돼야



 무슨 상업적 거래를 할 때 작성하는 계약서를 보면 반드시 거래 당사자 간 ‘갑(甲)’과 ‘을(乙)’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계약서 상 갑과 을은 상생을 위해  각각의 역할을 규정해 놓고 철저한 이행을 강제하는 내용이 주어진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 방안을 모색할 주체가 바로 갑과 을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합의서가 바로 계약서이다.


 그러나 계약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갑과 을의 순위가 분명하다. 갑이 먼저고 을이 그 뒤다. 이렇듯 갑과 을의 관계는 힘의 논리에서도 갑이 늘 우위에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관행처럼 돼 있다. ‘갑질’이라는 말은 있어도 ‘을질’이라는 말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상거래에 있어 갑과 을은 애초부터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을 바탕으로 관계 설정이 돼 을은 늘 갑의 횡포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이런 갑의 압박에서 ‘을 구하기’에 나섰다.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한다. 큰 박수를 받을 일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첫 표적이다. 가맹점주들과의 불합리한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신호탄이다. ‘을 구하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 하나인 적폐 청산의 첫 작품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득권자의 갑질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인지라 국민적 기대와 관심이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7월18일 가맹 분야 불공정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맹본사와 가맹점 간 거래의 투명성 확보 부문이다.  공정위는 본사 지정 필수품목의 마진이나 매장 리뉴얼 인테리어 리베이트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납품·유통 업체에서 받은 판매 장려금이나 특수관계인 공급·유통 업체의 매출액 정보 등도 가맹점에 제공해야 한다. 가맹 본부의 무조건적 강요를 막기 위한 일련의 제도적 장치다. 이렇게 되면 판촉비 등의 가맹점 전가 명분 마련이 어렵게 된다. 적절한 조치다.


 앞으로는 가맹 본사의 대주주나 임원의 부도덕한 행위로 가맹점이 손해를 입으면 배상 책임을 가맹 본부에 물을 수 있게 된다. 정우현 미스터피자 전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과 최호식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대표의 여직원 성추행 파문으로 매출 급락이라는 큰 손실을 보고도 하소연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분루를 삼켜야 했던 가맹점주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반가운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통상 가맹사업은 본사가 가맹점 매장수입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 즉 로열티 형태로 챙기는 구조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맹 본사는 가맹점에 필수품목을 쓰도록 하고 이를 통해 폭리를 취하는 족쇄 경영형태다. 심지어는 가맹점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매장 인테리어 리뉴얼을 주기적으로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가맹점주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사가 지정한 업체, 자재, 물품만을 사용할 수 있다. 을의 위치에서 울며 겨자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보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분히 ‘폭리’ 갑질이다.






 이런 ‘폭리’ 갑질은 외식프랜차이즈 ‘미스터피자 사건’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정 미스터피자 전 회장은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면서 친인척이 관여한 중간업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50억원대 이익을 빼돌려 검찰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일부 가맹점주들이 본사의 비용 전가 등에 항의해 프랜차이즈에서 이탈해 점포를 열자 가게 주변에 직영점을 내 장사를 못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갑질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정부의 이 같은 고강도 갑질 근절 조치에 프랜차이즈 본부업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 앞으로 달라지겠다며 일단은 바짝 엎드린 자세다. 가맹점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해 일체의 토를 달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이전 만행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정 노력을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적어도 3~5개월 정도의 시간을 달라고 주문했다. 자정을 위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면 과거처럼 그저 소나기를 피할 시간을 벌어볼 속셈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과 환골탈태만이 생존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프랜차이즈 가맹 점포는 조기퇴직에 내몰린 베이비붐 세대의 비빌 언덕이다. 장기간에 걸친 불황 속에서 그나마 소자본으로도 손쉽게 창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마다 늘려 있는 게 피자, 치킨집일 정도다. 그 만큼 점포 하나 열어 먹고 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가맹본부의 갑질까지 받아줘야 하는 것이 지금의 가맹점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갑질 근절책은 시의적절한 조치라 하겠다.






 하지만 ‘교각살우(矯角殺牛)’라고 했다. ‘작은 일에 힘쓰다가 큰일을 망친다’는 교훈이 담긴 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맹 본부와 가맹점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가맹본부의 못된 관행을 엄단하기 위해 프랜차이즈의 뿌리까지 고사시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가맹점인들 가맹 본사가 부실의 늪으로 빠져 하등 덕 될 게 없다. 나무줄기가 튼튼해야 곁가지도 튼실한 법 아닌가. 가맹 본부와 가맹점의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실적과 보여주기 행정에 함몰돼 자칫 소를 죽이거나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될 것이다. 가맹 본부와 가맹점 간 ‘상생’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바로 ‘윈-윈’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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