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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꼴뚜기’ 신세 된 박찬주 대장



 대한민국 남자라면 별 넷을 단 4성 장군의 위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의무병역제 때문에 대부분 군 복무를 하다 보니 철저한 계급 조직인 군의 대장 계급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직간접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반 사병의 경우 별의 숫자를 물문하고 길을 가다가도 차량의 별판만 보이면 눈에 띄지 않게 숨을 곳부터 찾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하물며 별을 네 개씩이나 단 4성 장군이니 군복을 입은 군인들에게는 함부로 쳐다볼 수조차 없는 신(神)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을 것이다. 독특한 군사문화의 단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4성 장군의 위엄은 옛말인가. 어쩌다 ‘어물전 꼴뚜기’ 신세가 된 4성 장군까지 등장했다. 주인공은 그의 부인과 함께 공관병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다 구설수에 오른 박찬주 대장(정책연수, 전 제2작전사령관)이다. 제2작전사령관의 공관에서 자식 같은 공관병을 못살게 구는 일탈을 저지른 사실이 폭로됐다. 이 때문에 군(軍) 전체에 망신살이 뻗치고 군 위상까지 급전직하했다. 유사시를 대비해 군 조직을 추스르고 지휘관으로서 위엄을 다져야 할 그런 중차대한 위치에서 고작 한 것이 사병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니 내는 세금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육군 2작전사령관 자리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보다는 대부분 군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의 대장 보직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의 엘리트 코스를 두루 섭렵한 그와 가족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저지른 상상이상의 ‘갑질’을 보면 혹시라도 주어진 권한과 권리를 마지막으로 최대한 마음껏 누려볼 요량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할 입장이라면 이런 일탈을 저질렀을까 싶다. 군 사병들 사이에서 쓰는 ‘말년 병장 몸조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박 대장은 이번에 제대로 걸려 든 셈이다.      


 군인권센터가 폭로한 ‘갑질’ 행태를 보면 박찬주 대장 부부는 국방의무를 완수하겠다고 군복을 입은 일반 사병들을 거의 하인 취급했다. 듣기에도 민망하고 상상조차 안 되는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그의 부인은 2작전사령관 공관에 살면서 한 달에 5번씩 10대나 되는 냉장고 물품을 모두 꺼낸 뒤 정리하는 작업 뿐만 아니라 주방, 집 전체 대청소까지 수시로 시켰다. 공관이 비록 공공건물이라 하더라도 공관에서 이뤄지는 한 가족의 생활은 전적으로 사생활이다. 상식 있는 주부라면 집안 살림을 절대로 남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박찬주 대장의 부인은 달랐던 것 같다.  






 또한 박찬주 대장의 부인이 일을 시키는 과정에서 폭언은 기본이었다. 요리를 전공한 공관병에게 “너 같은 게 요리사냐. 머리를 뽑아다 교체해주고 싶다”는 폭언을 일삼고 공관병의 팔뚝, 등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는가 하면 썩은 토마토를 던지거나 먹던 물을 공관병 얼굴에 뿌리기도 했다. 칼로 도마를 내리치며 부엌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위협까지 했다. 공관 외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병사인 경계병에게 텃밭 관리와 함께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사령관 가족이 먹을 만큼 작물을 수확하게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공관병들에게 호출용 전자 팔찌를 채운 것이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호출 벨을 누르면 지체 없이 뛰어와야 하는 방식이다. 사령관 부인은 별일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호출 벨을 눌렀다고 한다. 사령과 가족들만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분초를 다투는 급한 일이 있을 리 만무한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 염소를 방목해 키우는 농부가 염소들을 불러 모을 때 호루라기 신호를 보내는 장면과 매우 닮았다. 마치 인권 사각지대를 보는 것 같다.


 심지어는 사령관의 공군 복무 아들이 귀가를 하면 공관병들이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 주거나 속옷 빨래까지 도맡았다고 한다. 같은 사병 신분으로서 이 보다 더 굴욕적인 일이 있을까 싶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귀하디귀한 자식을 군에 보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려야 하는 부모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 아닌가. 나라를 지키는 줄 알았는데 기껏 한 지휘관 아내의 몸종이 돼 노예 노릇하고 있었다니 참담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박찬주 대장 부인의 폭언과 ‘갑질’을 장병들에 대한  인격모독이자 용서할 수 없는 인권유린 행위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공관병은 말 그대로 군 지휘관이 거주하는 공관 관리를 담당하는 병사다. 공관에서 생활하며 공관 관리 및 지휘통제실과의 연락 유지 등의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한다. 사적인 일에는 동원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박찬주 대장 부부는 도대체 무슨 근거와 권리로 병력을 사병(私兵)화 해 하인처럼 부렸는지 알수가 없다. 군은 명령에 줄고 명령에 살아야 한다. 이것이 목숨을 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밑거름이다. 박찬주 대장은 이런 신성한 명령권을 사적인 일에 쓰고 그의 부인에게 이양한 책임이 있다.


 박찬주 대장은 이외에도 2015년 대장 진급 직후 안보 강연을 위해 모교인 천안고를 방문하면서 대구에서 헬기를 타고 이동했고 지역부대에선 운동장에 흙먼지가 나지 않도록 살수차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7군단장 재임 시 저지른 일탈도 폭로됐다. 군 복지시설에 들러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마음대로 주문해 먹었다. 고기 집에서 회를 요구해 관리관이 2시간이상 걸리는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갔다 와야 했고 식당에서 제공하지 않는 추가 반찬을 주문하는 등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사를 통 구분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박찬주 대장은 이런 ‘갑질’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됐다. 비등하는 국민적 비난 때문에 전역 신청을 하고도 옷조차 마음대로 못 벗게 됐다. 국방부는 2작전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난 그에게 정책연수 보직을 주고 현역 신분에서 군 검찰 수사를 받도록 했다. 민간인 신분이 되면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내려진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군 검찰은 박찬주 대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형사입건하고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박찬주 대장의 자택과 2작사 공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됐다. 그의 부인도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당연한 조치이다.


 군 검찰 수사는 마땅히 이뤄져야 할 조치이자 수순이다. 그러나 ‘제 식구 감싸기’ 등으로 국민적 정서에 맞는 수사 결과와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더 큰 저항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 질 것이다. 균형감 있는 조사와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우리 군 조직 속에서 박찬주 대장과 같은 ‘갑질’은 비일비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처럼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지만 않았을 뿐이다. 철옹성 같은 군 조직이 국가안보를 앞세워 언론의 입까지 틀어막았으니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박찬주 대장 ‘갑질’ 의혹을 군 문화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군조직의 치부(恥部)인지라 무조건 덮으려 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폐쇄적 군 문화가 국민적 이해를 이끌어 내고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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