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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달걀’ 파동, 명백한 인재(人災)다



 요즈음 뉴스를 통해 세상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각자 할 일을 참 안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 모두 제자리에서 맡은바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정치권과 공직사회, 언론계 등 국가와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이른바 지도층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더 큰 실망감과 함께 비난의 화살을 쏟아 낸다. 그러나 늘 개선은 기대난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즈음해 이번에는 공직사회와 축산농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먹거리’에서 터졌다.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달걀에서 독성 강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름하여 ‘살충제 달걀’이다. 지금까지 잘 들어보지 못한 말 아닌가. 달걀에 살충제라니 결코 믿고 싶지 않은 말이다.






 달걀은 하루에 4천만 개 가까이 소비될 정도로 우리의 주요 먹거리이자 서민 밥상의 단백질 공급원이다. 달걀 그 자체로도 섭취가 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빵이나 피자, 김밥의 주요 재료일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런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니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과수나 농작물에 사용하는 살충제 성분이 달걀에서 검출됐다는 소식으로 마치 우리 모두 꼭 필요한 뭔가를 난데없이 빼앗긴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살충제 달걀’ 파동은 식품안전관리의 주무 정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축산농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터져 나온 엄연한 인재(人災)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소비자들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다. 무책임한 정부와 개념 없는 축산농가의 합작품이다.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단이 났다.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유럽에서 먼저 터졌다.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 달걀에서 맹독성 살충제인 피프로닐이 검출돼 유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잠깐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었다. 사람의 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독성 강한 살충제여서 닭 농가 등의 사용이 아예 금지된 피프로닐이 설마 했는데 경기 남양주의 친환경 산란계 농장 등에서 검출된 것이다.


 유럽의 살충제 달걀 파동이 터져 나오지 않았으면 우리 산란계 농가의 살충제 사용도 그냥 지나쳤을 일인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이전에 다른 숱한 농장들이 닭 진드기를 죽이기 위해 맹독성 살충제를 뿌려댔을지 모른다. 실제로 조사해보니 전국 1천400여개 산란계 농장 가운데 52곳에서 살충제 달걀이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 그것도 상당수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에서 살충제를 사용했다니 분통이 터질 일 아닌가. 건강을 위해 일반 달걀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 먹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경북지역 2곳의 친환경 산란계 농장 달걀에서는 38년 전부터 시판과 사용이 금지된 DDT 성분이 검출돼 아연 실색케 했다. 해당 농장주는 시중에 팔지도 않는 DDT가 왜 검출됐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추측컨대 신선한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산란용 닭들을 방목해 키운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온 사례 같다. 과거 사과와 복숭아 과수원 자리에 닭 농장을 만드는 바람에 닭들이 DDT 오염이 된 흙 속에 자란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더군다나 알 낳기가 끝난 노계 또한 DDT에 오염됐는데도 음식점 등으로 팔려나가 사용됐다고 한다.


 ‘살충제 달걀’은 언젠가는 터져 나올 일이었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1년 전부터 예고편은 있었다. 정치권이 밀집사육 산란계 농가에서 닭 벼룩, 진드기 등을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만큼 실태 조사를 강하게 요구했었다. 하지만 정부는 전국 산란계 농장의 4%를 샘플 검사한 뒤 피프로닐 검출이 없었다는 대답만 내놓았다. 대충한 조사이니 부실한 결과는 뻔할 뻔자다. 살충제 사용을 금지시켜 놓은 상태에서 설마 하는 마음이 앞섰거나 사회 이슈화가 되지 않은 사안이니 그냥 건성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뿐이 아니다. 올해 4월 한국소비자연맹 주최 토론회에서도 똑같은 지적이 나왔다. 산란계 농가를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해 보니 61%가 닭 진드기 때문에 살충제를 쓴 적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지만 당국은 무대응이었다. 알아서 챙겨도 시원찮을 판에 마치 일거리 하나 더 늘어날까 의도적으로 깔아뭉개는 듯 한 기분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사안의 중요성을 좀 더 빨리 인식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일이다.






 일이 터진 뒤 정부의 대응도 부실했다. 안이했다는 말이 맞다. 뒷북 행정은 기본이고 산란계 농장의 살충제 사용 실태 조사 과정에서 농축산부는 조사 결과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살충제 성분 검출 농장의 명단이 몇 번이나 번복 되는가 하면 조사대상 농장에 사전 연락을 통해 샘플을 채취하는 상식이하의 부실 검사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키운 셈이다.


 달걀의 유통 뒤 관리의 책임이 있는 식약처의 안이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국내산 달걀과 닭고기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호언장담했다. 결국은 나흘 뒤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국회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해 ‘업무파악조차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질타를 받았다. 식약처의 수장이면서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직원들을 탓했다. 정권 실세의 측근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인물이니 믿는 구석이 큰 것 같다. 한마디로 국민의 식품안전을 책임질 정부조직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내보인 꼴이다.






 이번 달걀 파동으로 친환경 인증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친환경 농장 780곳 가운데 무려 68곳이 살충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율로 보면 6.8%에 불과하지만 친환경 마크를 달면 1g의 살충제도 뿌려선 안 된다. 그러니 정부의 친환경 마크 관리 부실에 대한 원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혹자는 친환경 인증업무를 담당하는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농관원 출신 공무원들이 민간 인증기관에 대거 재취업하면서 인증 부여과정에서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른바 ‘농피아’(농관원+마피아)가 엉터리 친환경 인증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의심으로 보인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닭 사육, 산란 농가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됐다. 눈앞 이익에 눈이 먼 몇몇 농장들 때문에 농축산물 전체가 소비자 불신에 휩싸일 판이다. 벌써부터 달걀 값이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믿고 먹을 수 없으니 달걀 소비가 급락하고 생산한 달걀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한번 잃은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이번 달걀 파동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다시는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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