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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한·미 FTA 재협상, 당당하게 나서라



 우리나라와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이 결국은 재협상이라는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FTA 협상 개정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이달 6일 발표했다. 우리 스스로가 개정 절차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가 절대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2012년에 협정 체결이 이뤄졌으니 발효 5년만에 전면적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때나 올 6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표적 불공정 무역사례로 꼽았던 만큼 협정 개정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설마 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예상되는 충격파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협상 대상과 범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한·미 양측 모두 협정 개정 절차를 개시하겠다는 의사만 밝힌 상태다. 지금으로서는 자동차, 철강, 농업부문 등이 주요 현안으로 부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5년전 협정 체결 당시만큼이나 치열한 신경전과 밀고 당기기가 전개될 전망이다. 한번 손을 대고 난 뒤 다시 양측이 만나 불만을 얘기하고 내용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계가 미국 시장 문제까지 겹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우리 측이 한·미 FTA 개정 협상 절차 개시를 선언하자마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파상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먼저 삼성·LG전자 세탁기와 한국산 전력 변압기를 두고 시비를 걸었다. 세탁기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발동을 예고했고 전력 변압기는 지금까지 5년간 부과해온 반덤핑 관세를 연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현대중공업 등 한국 기업의 대미 변압기 수출액은 연간 2억 달러(2천300억원) 규모다. 태양광 패널도 수입규제 검토 대상이 됐다. 사실상 제3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우회 수출하고 있는 중국이 타깃이긴 하지만 말레이시아에 이어 미국내 수입 비중이 두 번째인 한국산 태양광 패널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쩍 강도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미국은 올해 한국을 상대로 모두 31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가동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인도와 함께 최대 수입 규제국 대열에 올라 있다. 세계 각국의 전체 수입규제 190건 가운데 16.3%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한국 대상 수입규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올 1월 이후 8건이 신규로 추가됐다. 미국이 올해 전체 교역국을 대상으로 내린 신규 수입규제가 24건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신규 수입규제 3건 가운데 1건이 한국제품인 셈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 압박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 우리 정부와 산업계가 향후 전개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선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예고의 불똥이 떨어진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계가 대응책 마련으로 부산하다.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세이프가드 청원에 대해 ITC가 만장일치로 산업피해 ‘긍정’ 판정을 내려 적용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수입규제 조치에 들어갈 경우 연간 1조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이로 인한 업계의 압박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와 업계는 민관 대책회의를 서둘러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그저 한국산 세탁기의 미국 수출이 제한될 경우 예상되는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와 제품가격 상승의 부작용을 부각시키기로 했다. 또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삼성·LG가 현지에 세탁기 공장 투자를 결정한 사실을 강조하고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프리미엄 제품과 부품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리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적극 제기하기로 했다. 공청회에도 참석해 의견을 낼 예정이다. 철회 보다는 강도를 낮추는 데 전력을 쏟겠다는 포석이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하고 씁쓸하다.






 국가간 통상 교섭 문제는 늘 험로다. 그 만큼 협의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국가의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어느 누구도 쉽사리 양보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의 논리가 작용해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한·미 FTA만 해도 그렇다. 협상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양국 모두 불만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정치논리가 개입되면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업적이 필요한 당시 정권과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에 함몰된 야당의 반발로 오랜 산고를 거쳐야 했었다. 그래서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의심까지 샀었다. 어찌됐던 미국과의 FTA는 성사됐고 5년간 탈 없이 잘 달렸다.


 그러나 이런 한·미 FTA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미국 대통령의 한·미간 무역 불공정 주장 때문에 ‘개정 협상’이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큰 파고를 만났다. 우리에게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라는 큰 과제가 던져졌다.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개정으로 미국이 자동차, 철강 등에서 관세율을 올릴 경우 향후 5년간 수출이 최대 19조원 가량 줄고 일자리는 15만4천개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언뜻 보면 우리 경제에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생각까지 들게 한다. 






 지나친 우려보다는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편이 옳다고 본다. 최악의 경우 ‘FTA 파기’의 배수진도 고려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그동안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경제 규모가 어떤 나라와도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지 오래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벼랑 끝 전술’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매우 적절한 자세로 보인다.


 정부는 한·미 FTA가 파기되면 미국도 득보다는 실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수출지역 다변화와 같은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도 보수와 진보로 나눠 당리당략에 따라 미국 측에 무게를 실어 주거나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재개정 협상에서 총력 태세로 정부를 도와야 마땅하다. 과정상 잘잘못은 정부를 상대로 추후 따져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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