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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대기업 조합원 고용세습, '딴 나라' 얘기인가



 마치 조선왕조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산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가히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 할 수 있는 노동계의 ‘고용세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음서제가 무엇인가. 조선시대 공신과 종실, 5품 이상 고위관료, 즉 특정계층의 자식이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관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이런 제도가 지구촌의 무한경쟁시대에 아직도 우리의 노동현장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니 무슨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어이가 없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물류·유통업체를 포함해 매출액 10조 원대의 30대 대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11개 기업(36.7%)에서 노동조합 조합원 자녀의 우선채용과 같은 ‘고용세습’ 조항을 단체협약 내용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사·경영권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 또는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는 기업도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늘 약자로만 봐 왔는데 노조의 위력이 이 정도인지는 짐작도 못했다.


 대기업의 ‘고용세습’ 내용을 보면 대우해양조선은 종업원을 신규 채용할 때 동일 조건이면 당사 종업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 한국지엠과 기아자동차,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등은 문구상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재직 중 사망자, 업무상 재해나 개인 신병으로 불가피하게 퇴직한 자의 직계 가족을 직원 신규 채용 시 우선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특혜도 보통 특혜가 아니다. 청년 실업난이 극에 달해 있는데 특정인의 자식 만을 위한 밥상이 따로 차려져 있다니 또 다른 ‘특권의식’으로 불릴 만하다.


 노사간 단체협상은 늘 밀고 당기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기 마련이다. 서로가 이해타산을 따지다 일부 양보도 하는 협상의 묘미를 발휘하며 타결을 짓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폐쇄’와 ‘파업’이라는 극약 처방을 쓰기도 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적당히 주고 받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고용세습’도 사측이 노조를 달래기 위해 눈감아 주다 빚어진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 인력 충원과 함께 노조의 입도 막을 수 있고 노조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인사 청탁(?)이라는 큰 밥그릇을 챙길 수 있는 데 서로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용세습’이 새삼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시장의 공정성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는 부의 세습 뿐 만아니라 직업의 세습이 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조인들의 세습은 전형적인 권력형이다. 무소불위의 법조인 자리에 있으면서 넘치는 자식사랑으로 자식을 요직에 앉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교직원 자녀에 대한 특례입학 또한 이런 유형의 세습이다. 종교 집단에서도 세습이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위한 사전작업에 전념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뒷전에 두는 모습을 간혹 전해 듣는다. 교회 내 갈등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 좋은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종교집단의 세습은 어떻게 보면 내부적인 문제 일 수 있다. 그러나 ‘고용세습’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있어 상대적 박탈감으로 작용한다. 고용시장의 공정성이 심하게 왜곡 될수 밖에 없다. 더 넓게 보면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기회를 그 만큼 갖지 못함으로써 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의가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고용세습’은 엄연한 위법행위이다. 고용부는 그래서 올해 8월말까지 노사가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하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 등 필요한 행정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쉽게 밥그릇을 뺏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노조는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의 이같은 방침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뜩이나 귀족노조니 황제노조니 하는 말 때문에 노조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곱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용세습’ 조항을 두고도 재벌의 경영권 세습이니 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노사가 공정한 입장에서 테이블에 앉을 때 협상은 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 눈치 저 눈치 살피지 말고 현행 법을 제대로 집행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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