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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롯데그룹은 누가 진정한 이웃인지 통감(痛感)하라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이 내홍(內訌)에 휘말렸다. 그것도 창업주 신격호 그룹 총괄회장의 후계 자리를 놓고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동생인 신동빈 그룹회장 형제가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 때문이다. 사태는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장남이 지난달 27일 부친인 신격호 그룹 총괄회장을 앞세워 동생인 신 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축출하려 시도한 것이 발단이다. 하루 만에 이뤄진 동생의 반격으로 뜻대로 되지 않은 장남은 특정 매체를 활용해 언론플레이를 시작했고 동생은 4년간 그룹회장으로서 심어놓은 사장단을 동원해 지지 선언을 하도록 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장남은 창업주인 아버지를 해임한 것은 자식으로서 못할 짓이라는 주장이고 동생은 형이 고령으로 건강이 온전치 않은 아버지를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며 비난하는 모양새이다. ‘못할 짓을 했다’는 형이나 ‘아버지가 정상이 아니다’는 동생 모두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지만 롯데가(家)로서는 망신살이 이만 저만 아니다. 그런데도 93세 고령의 아버지를 놓고 사생결단의 일전을 치를 태세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이제는 그룹이 장남을 지원하는 친족그룹과 동생의 가신그룹으로 두 패가 됐다. 결과도 예측불허다. 나라 망신까지 염려된다.




 재벌 기업의 경영권 분쟁은 드문 것이 아니다. 작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0대 재벌기업 중 17개 기업, 즉 2곳 중 1곳이 형제간 분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위 재벌그룹인 범 삼성그룹은 형제지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상속재산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이외에도 태광그룹과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대성그룹 등이 경영권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으로 결국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쪼개지는 위기를 겪었다. 두산그룹도 고 박두병 전 회장의 2세들이 회장직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창업주에서 2세들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단계에서 벌어진 형제간의 다툼이라는 사실이다. 넘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그냥 나눠 가져도 될 텐데 싸움질이라니 일반인들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아마도 탐욕이 도를 넘다보니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한다.


 롯데그룹 사태도 다른 재벌들의 경영권 다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번 형제간 경영권 갈등으로 롯데그룹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롯데’ 하면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친숙해 있는 단어이다. 그야말로 롯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롯데월드 놀이시설서 놀다가 롯데백화점에서 쇼핑한 뒤 롯데호텔에서 잠을 잔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순수 한국기업인 줄만 알았는데 실상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리 국민들의 실망감이 너무 커졌다. 롯데그룹의 정체성에 관한 일종의 배신감이다. 롯데의 지배구조를 보면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일본 광윤사(光潤社)→일본 롯데홀딩스→한국·일본 그룹 계열사로 돼 있다. 뒤집어보면 그룹 매출의 95%를 올리고 있는 한국 내 81개 계열사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롯데를 한국기업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신격호 총괄회장과 자식들은 일본말로 대화를 한다. 큰 아들은 아예 우리말을 모르는지 언론과 접촉해서도 일본 말 뿐이다. 일부 문서에는 일본 이름으로 서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이다. 이번 사태로 오히려 ‘일본기업’이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롯데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중화학보다는 소비산업이 그룹의 주력인 롯데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지배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볼 요량이란다. 롯데가 창사 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하겠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번 돈을 종자돈 삼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뒤 백화점, 호텔 등으로 사세를 확대했고 지금은 연매출 83조원, 국내외 직원 23만 명이라는 거대 기업군으로 롯데그룹이 성장했다. 롯데의 이런 성장에는 편법과 정부 지원이 뒷받침 됐다. 호텔 등에 국내에 투자할 때는 정부의 외국계 자금 우대 정책에 따라 각종 세제상 혜택을 받았다. 또한 일본에서 모집된 방한 일본인 관광객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오늘날의 롯데호텔과 면세점을 키웠다. 창업주는 경영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더 큰 관심을 쏟아 ‘부동산 투자 귀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고 한다. 계열사 사장단의 능력도 매출 증대 등 일반적 경영평가보다는 부동산 가치의 상승을 잣대로 삼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부동산 투기의 원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롯데가 유달리 요지에 부동산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업계 1위 기업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기존 시장 질서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전횡을 일삼은 점이다.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등 유통매장에 제조업체의 판촉사원을 파견하는 악습을 만든 것이 롯데다. 유통업체로서는 매장관리 사원 채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경쟁업체들은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경우다. 간혹 매장 내 파견 판촉사원 끼리 난투극이 벌어져 사회 문제가 된 적도 있다. 한때 제과업계 1위였던 H제과가 고사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겠냐는 추측도 있다. 백화점의 경우 상생이라는 개념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과다한 매출 수수료는 기본이고 거래업체들의 경쟁업체 납품 금지 등은 오래 묵은 전형적인 ‘갑질’이다. 이것이 지금 롯데의 분위기다. 이것만으로도 당연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마땅하다.


 일반인들은 롯데그룹 후계자가 두 형제 중 누가 되는 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경영능력이 있는 올바른 후계자가 정해져 지금의 임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너무 긴 시간 그룹을 장악하다보니 60대 형제간의 갈등을 불러왔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책임론이 솔솔 나오는 이유다. LG그룹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70세에 50세의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일체의 경영간섭을 하지 않아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성공적인 2세 경영 승계의 본보기이다. 한국말이 서툴러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롯데는 더 이상 ‘손가락 경영’과 같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절대 권력의 1인이 좌지우지하는 전근대적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정체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더 많은 관심과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신동빈 회장의 말처럼 매출의 95%를 올리는 한국 사회가 진정한 롯데의 이웃임을 통감(痛感)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만 토종기업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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