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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비정규직 고착화’ 우려 낳는 노동개혁


 현 정부의 4대 중점 개혁 사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노동시장 개혁’이 우여곡절 끝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달 13일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 핵심쟁점 2개 사안에서 조율이 이뤄져 잠정 합의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노사정 대타협이 시작된 것이 지난 1998년 2월이었으니 17년 만에 거둔 성과이다. 현 정부 들어서는 작년 9월1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혁을 주문한 지 꼭 1년 만이다. 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사 간 문제인데 이번에 속 내용이야 어떠하던 간에 그나마 ‘합의’라는 접점을 찾은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우리 노동시장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해도 될 만하다.




 노사정위원회와 한국노총, 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 등 노사정 4자 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보면 ‘노사 및 관련 전문가가 참여해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 또는 해고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 등으로 돼 있다. 말하자면 저(低)성과자(일반) 해고나 취업규칙 변경 등에서 정부가 지침을 마련하되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법제화 해 나가자는 합의이다. 무엇을 시행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담았다기 보다는 앞으로 마음을 합해 잘 의논해보자는 식의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향후 시행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겠다.


 노사정은 이번에 마음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으나 노동개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 합의를 이뤄내는 데에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갈 길이 구만리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부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이번 합의와 같은 또 다른 ‘합의 과정’을 수도 없이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계의 양대 산맥이면서 이번 노사정 합의에 불참한 민주노총이 오는 23일 서울서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만한 일들이 산재해 있다.


 입법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새누리당이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기간제근로자법, 파견근로자법 등 노동개혁 5개 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하기로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과 노동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노사정 대타협에서 추후 논의 과제로 돌린 비정규직 기간연장,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등이 발의 안에 포함됐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지난 20일 양대 쟁점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에 대한 지침 마련을 연내 마무리 짓겠다고 한 부분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초반부터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다.




 노사정 합의 내용 가운데 우리가 특히 눈 여겨 봐야 할 내용은 야당과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한 연장의 ‘기간제 근로자법’ 개정안이다. 노동 5법 연내 처리의 가장 큰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기간제법 개정안을 통해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예외적 연장 허용' 규정을 뒀다. 현행 2년인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35세 이상 근로자가 직접 연장을 신청하는 경우 2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편법 해고를 막기 위한 보호 장치라는 것이 여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야당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의 주장 모두 나름 일리(一理)가 있다. 그렇다보니 어느 쪽이 옳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선택 사항일 뿐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반하는 일자리 가운데 하나이다. 사용자가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그야말로 임시직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쉬운 해고와 적은 임금의 매력이 있어 고용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오히려 선호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보다 더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정규직의 50% 수준에 머물 정도로 엄청난 차별을 받는다. 사용자라는 ‘갑’과 피고용자라는 ‘을’의 관계이다 보니  고용의 불이익을 당하고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늘로 여겨질 정도다. 근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보호 장치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비정규직은 불경기의 일면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그 자리를 메운 것이 860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임금을 줄 수 없고 적은 임금의 일자리 조차 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우리 경제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할 정도다. 이번에 노사정이 검토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 또한 오랜 기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10%를 넘는 청년 실업률 등을 감안하면 지난 8월말 현재 601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존재 이유는 분명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과 관련한 입법화는 자칫 비정규직을 고착화 할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오히려 ‘법적 보호’(?)를 받으며 마음 놓고 비정규직을 활용하려 들 것이다. 근로자는 우선 임시직이라도 발을 담그고 볼려는 마음이 앞서겠지만 4년 뒤 취업 경쟁력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첫 취업 연령을 넘긴 것이 추후 정규직 취업 때 ‘발목’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급속 회복돼 기업마다 구인난을 겪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말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은 늘릴 것이 아니라 지금의 2년에서 오히려 줄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대신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등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4년간이나 고용할 정도로 필요한 인력인데도 정규직 전환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기업인의 양심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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