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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 이러고도 내년에 또 열 수 있겠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우리 경제의 메가톤급 악재로 급격히 위축된 소비를 진작시키기위해 기획된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많은 기대 속에 시작됐다. 행사 기간은 10월1일부터 2주간이고 전국의 백화점, 대형마트, 재래시장 등의 2만7천여 개 점포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 점포수를 보면 분명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 맞다. 일반 소비자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중국인 관광객(유커)들 까지 큰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별로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아 보인다. 정부가 주도한 행사인지라 믿고 행사장을 찾은 수많은 고객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말이 ‘슈퍼 세일’이지 진열된 상품은 대부분이 이월재고 상품이고 할인율도 평상시 할인행사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평가다. 그야말로 ‘무늬만’이다. 벌써부터 ‘블랙구라이데이’, ‘대국민 사기극’ 등의 실망감을 표시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고도 내년에 똑같은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우려된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열리는 연중 최대 규모의 세일 행사이다. 11월 4번째 목요일로 정해져 있는 추수감사절 다음날 금요일을 일컫는다. 미국 기업들은 블랙 프라이데이 부터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이어지는 ‘홀리데이 시즌’에 1년 중 가장 큰 폭의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불과 한 달여 동안의 소비가 미국 연간 소비의 2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하니 미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상점들도 장부에 빨간색(Red ink)의 적자 대신 검은색(Black ink)의 흑자를 쓸 수 있어 ‘블랙’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한다. 1년 단위로 결산하는 기업은 해가 바뀌기 전에 남아 있는 상품을 처리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80-90%에 달하는 할인율로 원하는 물품을 살 수 있어 기업과 소비자가 이때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영국 등에서도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 날인 12월 26일 ‘박싱데이(Boxing Day)’에 소매상들이 대폭 인하한 가격에 재고 상품을 판매한다




 우리는 해마다 미국발 외신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문을 열기도 전에 상점 앞에 긴 줄이 서고 한정된 물건을 놓고 고객들끼리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런 미국의 특별판매 행사를 벤치마킹 한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에 건 기대가 그 만큼 컸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딴 판이다. 정부의 기획 과정을 보면 이미 예견된 결과이다. 6월에 터진 ‘메르스’ 사태로 얼어붙은 내수경기를 녹이고 9월의 추석 소비심리를 이어가기 위해 기획됐다. 1년 전부터 준비를 하는 미국과 사뭇 다르다. 급조된 행사인 셈이다. 중소기업청은 9월 22일부터 참가신청 접수를 한 뒤 행사 하루 전인 30일 대상 전통시장을 선정, 지원을 통보했다고 하니 얼마나 초고속으로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사개막 신호탄이 터졌는데도 재래시장 점포들은 행사가 끝날 시점인 10월 셋째 주가 돼야 그나마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뭐가 그리 바쁘게 만들었을까.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결과물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구축해 놓은 행사 홈페이지도 참여 브랜드 명단만 있고 자세한 이벤트 내용이 없는 등 졸속으로 꾸민 흔적이 역력하다.


 개최 시기도 논란이다. 10월 초가 백화점들이 가을 할인행사를 하는 시기이고 중국 국경절(10월 1-7일)이 끼여 있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특별 행사를 하지 않아도 일정 매출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행사대상 품목과 할인율 등에서 자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유통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백화점 등은 주로 식품 등 생필품류를 이번 행사에 내놓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은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명품, 패션 등 평소 일반 소비자들이 가격부담으로 구입하기 어려운 품목들을 ‘대방출’ 형태로 내놓아 1년을 기다린 보람을 갖도록 하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할인율 또한 고객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발표는 30-70%이지만 실제 고객 관심 품목은 정기 바겐세일 수준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행사 전 정상가격을 배로 부풀려 표기해 놓고는 50%를 할인해 주는  ‘비양심적’ 상술도 자행된다고 하니 소비자 불신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와 유통업계는 ‘관심을 끄는 데만 성공했을 뿐 살 게 없다’는 말을 잘 새겨 들어야 한다. 이번 행사 시작 이틀 동안 20-30%의 매출 신장을 보이며 ‘나홀로’ 활기를 띠고 있는 백화점처럼 특정 업계만이 혜택을 누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전, 패션 의류 등 보다 많은 제조업체들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고가 품목의 파격 할인 등이 행사의 핵심이 돼야 할 것이다. 기업은 제품을 다음 해로 이월하지 않아도 되고 소비자에게는 파격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때 행사가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하는 계기가 된다. ‘눈속임’ 등으로 망신살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연례행사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민간 합동 컨트롤 타워’를 구성해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업체 간 협조, 관계자 교육 등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가 하는 일 다 그렇지’라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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