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8 (일)

  • 구름많음동두천 -1.9℃
  • 구름조금강릉 9.5℃
  • 박무서울 1.4℃
  • 구름많음대전 0.1℃
  • 박무대구 0.3℃
  • 맑음울산 3.2℃
  • 흐림광주 7.1℃
  • 구름많음부산 7.5℃
  • 흐림고창 9.5℃
  • 구름많음제주 10.8℃
  • 구름많음강화 1.1℃
  • 흐림보은 -2.9℃
  • 흐림금산 -2.1℃
  • 흐림강진군 8.6℃
  • 맑음경주시 -1.2℃
  • 흐림거제 3.4℃
기상청 제공

CSR

‘좀비기업’ 양산에 정치 · 금융권 책임은 없나


 좀비(zombie)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부활한 시체를 일컫는 단어로 독자적인 생존능력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인기 있는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좀비는 쉽게 죽지 않고 오히려 끈질기게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기만 한다. 기업에도 ‘좀비기업’이 있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이 심해 차입금이나 정부지원으로 그나마 연명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이런 기업의 폐해는 불을 보듯 뻔 한 만큼 가능하면 빨리 퇴출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금융권이 이런 ‘좀비기업’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채권은행들은 2천여 곳에 이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기 신용위험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까지 세부 평가를 통해 최종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확정할 방침이다. 평가 결과 C등급을 받으면 기업개선작업인 워크아웃이 시작되고 D등급이면 모든 자금 지원이 중단되는 고강도 퇴출 작업이다. LG경제연구원이  628개 비금융 상장사의 올해 1·4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비율이 34.9%로 나타났다고 한다. 3곳 중 1곳이 좀비기업이라는 말이니 이 같은 금융권의 조치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부채규모는 올해 1분기 말을 기준으로 볼 때 모두 2천34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부채가 부실기업에 쏠렸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금융권이 1천10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보다 기업 부채를 더 심각하게 보고는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경기침체로 부실기업이 급속히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좀비기업 정리를 위한 엄격하고 상시적 평가를 은행들에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 열린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또한 속도감 있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대통령께 건의했다고 한다. 지금 분위기로는 올 연말쯤 재계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메가톤급 핵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좀비기업이 늘어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경제여건이 나빠져서도 그렇겠지만 금융당국의 판단 잘못과 알게 모르게 힘을 뻗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상당수가 된다. 지난 8월 대우해양조선의 대규모 부실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부 은행들이 여신 축소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식의 경고를 했다. 은행들의 소신 있는 진단과 판단을 방해한 꼴이다. 진 원장의 말은 은행들의 무분별한 여신 축소로 인한 선의의 피해를 막겠다는 의지로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추상같은 금융당국의 수장이 내뱉은 한마디에 오금이 저리지 않을 은행들이 있겠는가. 이를 틈타 좀비기업은 그 생명을 한차례 연장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부실기업의 신용을 상시 평가하라고 하니 은행들은 한계기업을 놓고 소신을 잃은 채 우왕좌왕할 게 뻔하다. 평가만 하고 처리는 눈치를 보며 또 기다려야 할 판이다. 


 우리는 고 성완종 회장이 주도한 경남기업 사태의 실상을 보면서 정치권의 입김 또한 좀비기업의 연명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태가 터지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그 이면에 연루돼 있었다. 아직 재판중이어서 진실은 더 가봐야만 밝혀지겠지만 하나같이 모두들 거물급이다. 경남기업으로서는 부실이 거듭되자 각계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연명해야 할 입장이다 보니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명운동에 나섰을 것이다. 정치권에 몸을 담아 본 고 성 회장 또한 늘 ‘갑’의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의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정치권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좀비’ 경남기업이 정치권을 숙주로 살아 온 것이다. 문제는 경남기업 사태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이다. ‘힘 센’ 정치인들의 이권 개입과 영향력 행사가 낯설지 않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금융권 또한 좀비기업이 양산되는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대출을 한 기업이 부실로 최종 판결나면 금융권은 그 책임 때문에 좌불안석이 된다. 내부적으로도 책임의 소재를 따져 문책 등의 후속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출을 연장해서라도 기업을 살리려 애쓴다. 회생이 어려운 줄 뻔히 알면서도 보신주의 때문에 상처를 계속 키우는 셈이다. 좀비기업이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는 이유이다. 금융권의 눈치 보기도 문제다. 일반인들에게는 높은 금융권 문턱이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진다. 특히 정책금융이 더더욱 그렇다. 정부가 정책금융으로 좀비기업을 키우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부분이다. 금융이 우량기업도 키우기도 하지만 반대로 좀비기업을 양산할 수도 있는 만큼 그 책임감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원리다.


 우리 경제 앞에는 중국 경제의 침체와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대형 악재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부실기업이 연쇄도산을 하고 금융산업 부실이 확대되면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처럼 금융권이 선택을 잘 하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은 영향력 행사를 자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의 자성도 필요하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