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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대학시절 필수 교양과목이었던 한국사 강의가 생각난다. 흔치 않은 학사 출신 교수이면서 당당히 최고 권위의 사학자로 존경받던 고(故) 이기백 교수가 맡은 강의였다. 강의 교재인 그의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은 러시아어와 영어 등으로 번역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 받는 책이다. 이런 명망 있는 교수에게 우리의 역사를 배웠다는 데서 큰 자부심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그는 강의 중에 역사공부가 단순히 역사가 만들어진 연대와 그 역사를 만든 인물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역설하곤 했다. 그렇다보니 시험도 시대별 흐름과 역사 속에 기록된 사실들이 품고 있는 배경과 의미를 각자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지를 묻는 2~3개 문제만이 출제돼 암기에 익숙한 우리들을 당황하게 했던 경험이 새삼스럽게 되살아난다. 지금 생각하니 역사가 비록 기록이긴 하나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은 접근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려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먼 옛날 학창시절을 떠올려 본 것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발표로 빚어진 논란 때문이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지난 12일  2017년 1학기부터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2년 역사 교과서 검정제를 도입한 이후 사실 오류와 편향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가 주장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이유이다. 사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2년 전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단초가 됐다. 좌편향 교과서가 대세였던 교과서 시장에 교학사의 우파 교과서가 들어오면서 교과서의 편향성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2013년 10월 검정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요구한 교육부의 수정·보완 사항 829건 가운데 교학사가  30.3%(251건)를 차지할 정도로 내용상 오류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史實) 잘못(226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관(史觀)에 의한 의도적 기술(25건)이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2013년 6월과 작년 2월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을 주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미국 방문에 앞서 소집한 긴급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역사교육은 정쟁이나 이념 대립에 의해서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눠선 안 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가치관을 확립해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줘야 할 사명”이라고 말했다.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온 나라가 시끄럽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거들다 보니 논란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정치권은 아예 여·야로 양분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발언도 위험수위를 넘어 섰다. 논리 전개보다는 거친 ‘막말성’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현안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내년 총선만을 의식한 ‘노이즈마켓팅’처럼 보인다. 의원총회에서 국정화 지지를 당론으로 채택한 새누리당은 ‘종북’ ‘친북’ 프레임을 다시 꺼내들었다. ‘좌편향 교과서가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거나 교과서에 주체사상이 언급된 점을 들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철거하기도 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 교실인지 종북 좌파 이념 혁명전사 양성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의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현행 교과서가 박근혜정부의 검정을 통과했으니 새누리당은 주사파, 나치 선전부장 괴벨스의 추종자”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아버지의 10월 유신이 대한민국 헌정을 유린한 것처럼 딸의 10월 유신은 대한민국 역사를 유린하려고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 때리기’에도 열심이다. 입만 열면 입버릇처럼 ‘나라 걱정’(?) 한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리 만무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싸움박질 인지 묻고 싶다. 애국심 경쟁으로 봐주길 바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만의 싸움이 그저 볼썽사나울 뿐이다.




 학계와 교육계의 반발도 심상찮다. 한국외국어대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중앙대 등 사학과 교수들은 15일 성명을 통해 "역사를 국정화하는 것은 전제정부나 독재체제에서 행하는 일"이라며 국정교과서의 집필참여 거부 뿐만 아니라 제작과 관련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와 고려대 역사계열 교수들, 경희대 사학과 교수들도 같은 선언을 하는 등 지금까지 국정화 반대와 집필 불참을 선언한 교수가 200명에 가깝다. 교육계 원로와 학생들까지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의 교육감 가운데 14명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다간 교육부 공무원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우리 한국민의 몸속에는 대결구도를 만드는 특별한 유전자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의 사색당파가 그랬고 근현대사로 넘어와서도 끊임없는 갈등과 대결을 이어온 것만 봐도 그렇다. 건건이 그저 이분법적 대결 양상을 보인다. 상대를 압도해야만 내가 산다는 식이다 보니 주장이 지나치게 강하다. 이런 이유로 무슨 숨어있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그럴 소지가 충분하다. 보수와 진보,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결이 극과 극이다. 도대체 합의점을 찾아내 보려는 논쟁은 아닌 것 같다.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 특히 여당은 당론으로 정부의 입장 방어에 총력 태세를 선언했다. 국정화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작품이라는 오해를 살만하다. 한걸음 더 나가보면 논란을 감수하면서 까지 국정화에 집착하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촉박한 일정과 필진 선정 등으로 앞으로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집필과정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은 항상 논란거리다. 이념대결로 점철 되다시피한 근현대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학생들에게 진실을 찾아 줄려는 욕심을 내기 보다는 ‘역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다양하게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쪽으로 교육이 진행돼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교육부가 정해 놓은 국정교과서의 명칭처럼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만 고집하다 보면 획일화의 부작용은 불가피하고 다양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검정교과서의 편향과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국사편찬위원회가 또다시 국정 교과서 제작을 주도하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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