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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로 끝난 포스코 비리 수사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8개월 전인 지난 3월 시작된 포스코 비리 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정부 들어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려온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번에도 권력 앞에 약한 것이 검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원칙을 소중히 여기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것을 최대의 국정철학으로 삼고 있는 지금 정부의 향후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지 2년을 넘기면서 시작된 검찰의 포스코 비리 수사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과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32명을 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수사 초기만 해도 전 정권과 관련된 비리 수사인 만큼 국민적 관심을 끈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소된 32명 중 17명이 구속 기소됐다고 하나 핵심 인물 5명은 모두 불구속 처리될 정도로 결과는 기대보다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냥 놔둘 수 없으니 마치 가벼운 몇 가지 혐의로 면죄부를 위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찰이 ‘정치적’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검찰의 수사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비리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발표 내용을 한번 보자. 석연찮은 점은 금방 드러난다. 포스코 비리의 중심에 서 있는 정 전 회장은 성진지오텍 인수합병으로 회사에 1천5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치고 포스코 계열사나 협력사에서 빚어진 천문학적 액수의 횡령·배임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구속이 아닌 불구속으로 기소됐다. 특히 정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포스코의 사업 다각화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발전·에너지업체인 성진지오텍 지분 40.4%를 1천292억 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하고는 최종적으로는 1천592억 원에 인수 작업을 마쳤다.


 문제는 성진지오텍이 부실 투성이의 ‘깡통기업’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인수 당시 이 회사는 부채비율이 1천613%(2009년 기준)에 달했고 ‘기업 존속능력 의문’ 판정을 받고 있었다. 이런데도 포스코는 성진지오텍 대주주인 전정도 회장의 주식을 사들이며 100%에 가까운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했고 산업은행도 신주인수권을 전 회장에게 저가로 판매했다. 이 덕택에 전정도 회장은 290억원에 가까운 매각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포스코는 이후 성진지오텍의 채무 등을 해결하기 위해  6천억 원을 쏟아 붓고 계열사 포스코플랜텍과 합쳤지만 상황이 좋아지기는 커녕 우량기업인 포스코플랜텍 마저 워크아웃 절차를 밟는 부실기업으로 만들었다. 세계적 기업 포스코에 엄청난 피해를 준 꼴이다.


 누가 봐도 특정기업의 특정인을 밀어주기 위한 시나리오이다. 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성진지오텍을 인수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성진지오텍 인수합병의 조력자인 산업은행 조차 아직까지 어떤 해명이나 변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 전 회장이나 산업은행이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할 만큼 말 못할 사정이 많아 보인다. 깃털이 아니라 몸통의 실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포스코나 검찰이나 매 한가지 마음일지 모른다. 검찰은 정치권의 부당 개입 뿐 아니라 거래 업체들과의 비리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찾아낸 범죄 혐의들에 골프접대, 취업청탁, 금품수수 등 짜잔한 개인비리까지 포함시킨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포스코는 정준양 전 회장 체제의 5년과 함께 8개월간 이어진 긴 수사로 만신창이가 됐다. 실제로 방만 경영으로 점철되는 정 전 회장 재임 5년간 포스코는 영업이익이 4조원이나 줄고 부채는 20조원이 늘어났다. 최고등급이던 신용등급도 추락했고 우량계열사 포스코플랜텍의 부실화로 임직원 300여명을 감축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계열사를 30여 개나 늘리는 무리한 기업인수로 2009년에 7조원이던 현금성 자산은 3년만에 2조원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정권 실세의 힘을 빌어 차지한 회장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한 최고경영자의 흐린 시야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포스코는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입장자료를 내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회사 안팎의 조언을 수렴해 경영 전반을 면밀히 재점검 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이젠 더 이상 세계적 우량기업이 아니다. 평범한 일반기업으로 추락한 포스코로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없이는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정권의 ‘우량한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골탈태해야 한다. 민영기업의 정체성도 이번 기회에 재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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