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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항 도루묵 이야기

들뜬 마음으로 도착하니 저녁 8시였는데 거리는 어두 컴컴하여 가로등의 불빛만 드문드문 보이고 인적은 끊긴듯합니다.

유례없는 초겨울 한파 탓인가 했더니 그것만은 아닙니다.

경기가 아예 없으니 손님도 뜸해 늦게까지 환하게 불을 켜고 손님을 기다리는 건 전력낭비요 시간낭비인 것이죠.

오른 전기세도 만만치 않아 전기료 감당도 어렵게된 처지입니다. 강원도 북단 거진 항구의 12월 풍경입니다.

쉬퍼스저널 직원들이 워크샵 차 방문했던 거진항 해녀 횟집에도 방마다 냉기만 흐르고 손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전세 내고 저녁을 한 셈이 됐습니다.

꽁꽁 언 항구의 모습을 보면서 허금자 해녀 사장이 정성으로 차려준 식탁에서 모처럼 도루묵을 접했습니다.

노르스름하게 구워서 내놓은 알진 도루묵은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계절 생선이죠.

거진항의 주종이었던 명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그나마 도루묵이 많이 잡힌다는데 또 다른 문제는 많이 잡히다보니 가격이 폭락해 산지에서 배송하는 배송비 때문에 가격이 맞지 않다는 것이죠.

일한 만큼 남는 장사가 안 되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도루묵에 얽힌 일화는 이전부터 전해져 오는 것 중 하나가 조선 중기 인조 때 택당 이식의 도루묵을 읊은 ‘환목어’가 회자되죠.

그 한 구절을 인용하면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그 모양새도 볼만한 게 없다네...’라며 도루묵의 볼품 없음을 적고 있죠.

이어 임금이 난리를 피해 고초를 겪을 때 허기가 져서인지 아주 맛있게 드시고 서울 가서 다시 먹었는데 맛이 영 아니어서 표정이 안 좋아지고 푸대접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온 게 ‘말짱 도루묵’이죠. 도루묵같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약속했던 일이 어그러지고, 준비했더니 행사가 취소되고, 시험공부 많이 했는데 몇 개밖에 나오지 않고 따놓은 승진 대상에서 빠지는 등 인생 자체가 말짱 도룩묵인지 모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에 우리 삶이 도루묵인지도 모르고요. 한해가 다 저뭅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희망보다는 절망, 승진보다는 낙오가, 취업보다는 백수가 더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거진 앞바다에도 풍어보다는 한숨의 빈 배가 더 많았고 유독 찬겨울에 그나마 도루묵이 밥상을 데워주는 것으로 위안 삼습니다.

역설적으로 살아가는 이런저런 일들이 도루묵 지경인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도루묵은 풍어라니참 묘한 대비이죠.

도루묵이 말짱 도루묵이 안 되도록 도루묵 값도 좀 올라야 되겠고 우리가 하는 일이 새해에는 말짱 도루묵 되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대선후보들의 장밋빛 공약집도 말짱 도루묵이 안 되길 기대해봅니다.

이게 진짜 도루묵이냐며 동료는 참 고소하다고 먹는 느낌을 이야기했지만 찬바람만 몰아치는 거진항구의 희미한 불빛은 우리의 삶이 여기서 멈추는 말짱 도루묵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어둠의 두께만큼 실어다 줍니다.

군청의 최영준 과장은 “희망거리가 없다.”고 탄식합니다.

철 많이 잡히고 마는 파시 같은 리듬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어촌이 되는 길은 무엇인지 사즉생의 마음으로 생각해 볼때입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시원한 마음보다는 답답함이 몰려드는 거진항 찬바람을 기억합니다.

글/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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