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가 슬픔에 잠겨 있다. 한국 해운업계의 큰 별이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노환으로 타계하신 故 이맹기 회장(사진)은 한국해운업계의 산증인이라 말할 수 있다. 고인은 해군사관학교(1기)를 나와 해군참모 총장을 역임하는 등 바다와 인생의 시작을 함께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대한해운공사 사장, 대한해운 사장, 한국선주협회 회장,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회장 등을 거치며 국내 해운업계의 대부이자 큰 형님으로 귀감이 되어 왔다.
故 이맹기 회장은 1925년 3월 4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47년 해군사관학교 1기, 해군참모총장을 거쳐 64년 예편한 후, 1964년 대한해운공사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3년 후에는 경영실적이 가장 우수한 국영기업체로 발전시킬 만큼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해운공사가 민영화되자 타 공사의 사장취임 권유를 뒤로하고 해운업계를 선택한 고인은 1968년 해운입국의 기치아래 대한해운을 창립했으며, 국가와 국적선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선대확충이 가장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 포스코(舊 포항제철)과의 석탄, 철광석 장기해송계약을 시발로 국내최대전용선사의 기반을 닦았으며 이를 통한 국가기간산업 발전에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
한편 제6대 해군참모총장으로서 해군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수병과 참모총장이라는 일화를 통해 누구나 각기 직위와 역할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더불어 상호존중을 강조했으며, 이같은 고인의 철학은 이후 대한해운의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돼 대한해운은 창립이래 단 한번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다. 또한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을 역설한 고인의 신념대로 옥포장학회, 해성사회윤리문제연구소 운영을 통해 장학사업과 연구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고인은 해운 뿐 아니라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한 점을 인정받아 1951년부터 1955년까지 금성충무무공훈장 3회, 금성화랑무공훈장 1회 및 보국훈장통일장(1963), 동탑산업훈장(1979), 금탑산업훈장(1981) 등을 받았다.
현재 그가 일군 대한해운은 벌크 선복량 기준 세계 11위, 연매출 1조 이상을 눈앞에 둔 대형선사로서 성장했다.
유감스럽게도 고인의 발인일인 12일은 대한해운의 창립기념일이여서 그를 아는 모든 해운인들의 가슴을 더욱 비통하게 하고 있다.
故 이맹기 회장은 존경받는 해운인으로 영원히 우리들 뇌리속에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용무 기자 ymryu@kt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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