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대서양 연안의 르아브르항이 새 단장을 준비하고 있다. 갑문식 도크로 유명한 르아브르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함포사격과 폭격으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지만, 오늘날에는 유럽 유수의 무역항으로 다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새로운 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추고, 1990년대 완공된 부두도 컨테이너 터미널로 확장할 예정이다.
성장과정과 현재 모습 1517년 프랑수아 1세가 노르망디지방 센강 하구 수로를 통해 루앙, 파리 등 프랑스 내륙 대도시로 접근하기 쉬운 전략적 요충지에 항구도시를 건설을 명령하고 ‘르아브르 드 그라스’(혜택 받은 항구)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고래와 대구를 잡기 위한 어업기지였다가 17세기 들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교역하는 상업항으로 발전했다. 18세기 프랑스의 주요 해군기지로 지정되고, 18세기 말 프랑스의 4대 항구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19세기 파리에서 루앙을 거쳐 르아브르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고, 운하가 건설되면서 파리의 외항 구실을 하게 됐다.
19세기 중반 6만명이었던 르아브르 인구는 20세기 초 19만명으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패한 뒤, 르아브로는 독일이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1944년 9월까지 영국과 미국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조선소 등 항만시설과 도심지역이 약 80%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1964년까지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는 마르세유에 이어 프랑스 제2의 항구도시이자 북유럽에서 5번째로 큰 항만이 됐다. 20세기 위대한 건축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가 재개발한 지역은 2005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배후물류단지를 포함해 전체 면적이 약 5000ha인 르아브르항 관리·운영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은 르아브르항만공사가 맡아왔다. 그러나 2011년 5월 50년 장기계약을 통해 민영화되면서 GPMH(Grand Port Maritime du Harve)로 바뀌었다. 르아브르항에는 1만TEU급 이상 대형 선박이 연간 250회 가량 기항하고 있는데, 수로를 통해 내륙운송과 연계가 가능하다. 피더서비스를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배후지까지 물자를 수송할 수 있다. 공항과 인접한 덕분에 항공화물과의 연계도 쉽다.
주요 시설과 처리물동량 르아브르항에서 주로 처리하는 화물은 원유, 사료, 설탕, 자동차 등이다. 특히 원유 수입항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로 수입되는 전체 원유의 약 40%가 르아브르항을 거친다. 대형 유조선이 수송한 원유를 저장하고 정제하는 시설과 석유화학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덕분이다. 르아브르와 인근 앙티페르 등 센강 하류엔 정유산업단지가 조성됐다. 파리까지 이어지는 송유관도 갖추었다. 석유화학과 더불어 조선, 항공, 기계, 자동차, 식품 등의 공업도 발달했다. 물류 중심지답게 르아브르 대학교엔 프랑스에서 하나뿐인 물류대학원(ISEL)이 개설됐다.
르아브르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8m에 달해 갑문식 도크를 갖추었다. 갑문은 길이 70m, 폭 10.5m, 높이 24.5m 규모여서 최대 25만톤급 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있다. 르아브르항은 가장 오래된 애틀랜틱 컨테이너부두를 비롯해 유럽·애틀랜틱부두, 유럽부두, 노르망디부두, 프랑스부두 등으로 이뤄졌다. 컨테이너 선석 수는 총 24개이며, 안벽의 총 연장은 6865m다. 21세기를 앞두고 컨테이너선이 대형화되고 르아브르항의 화물처리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프랑스 정부는 ‘포트 2000 프로젝트’(신항만 2000 개발 계획)를 수립했다. 물동량 증가에 대응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의 연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15년까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유치할 수 있는 시설과 철도, 도로, 수로 등 내륙수송 인프라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르아브르항의 경쟁력을 높이고 유럽의 물류 중심지로 육성하려는 뜻이 담긴 프로젝트인 셈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수요예측센터에 따르면, 포트 2000 프로젝트에 따라 총 5000만 유로를 투자해 지은 컨테이너 터미널이 운영 중이고, 1억3900만 유로를 투자한 복합운송터미널 개발이 시작됐다. 2014년에 완공 예정인 신항 공사와 함께 구항도 개보수 과정을 거쳐 새로 단장하게 된다. 공사를 마치면 신항 터미널은 1만8000TEU급, 구항은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접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항 개발과 구항 개보수에 필요한 자금은 7억 유로로 예상된다.
친환경 선박 인센티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선박의 항만이용료를 10% 할인해주는 르아브르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02년 172만TEU에서 2011년 220만TEU로 연평균 2.9%씩 늘었다. 연도별 물동량을 살펴보면, 265만6000TEU를 처리한 2007년 전년(213만TEU) 대비 24.7% 증가율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8년 248만9000TEU, 2009년 220만TEU로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2010년엔 240만TEU로 늘었으나, 2011년 220만TEU를 처리하며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 2011년 기준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세계 42위였다.
2개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 르아브르항 운영사 GPMH는 2개 컨테이너 터미널을 개발해 하역능력을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각각의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 사업에 참여할 컨소시엄 또는 단독 입찰자를 모집한다. 사업 대상은 ‘아지(아시아)’와 ‘오사카’(Asie and Osaka) 부두, ‘포트 2000’의 11·12선석이며, 관심 있는 사업자는 사업 수행계획 관련 서류를 구비한 뒤, 10월 1일 오후 5시까지 참여의향서를 GPMH에 제출해야 한다.
<포트테크놀로지>(Porttechnology) 등에 따르면, 사업 대상 가운데 아지와 오사카 부두는 각각 1990년과 1993년에 완공됐다. 두 부두의 안벽수심은 13.5m이며, 길이는 아지가 610m, 오사카는 430m. 남쪽에 유류터미널이 위치하고 철도와 도로, 강과 연결된 개발 대상 부지 면적은 35㏊인데, 63㏊까지 확장할 예정이다. 갠트리 크레인을 위한 선로 폭은 21.5m. 아지 부두엔 중국의 대형 항만장비제조업체인 상하이선화중공업(ZPMC)이 2012년 인도한 파나막스급 이상 갠트리 크레인 2대가 설치돼 있다.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 계획은 안벽수심을 최대 15m까지 증심, 새로운 갠트리 크레인 궤도 설치, 아지 부두를 서쪽으로 최대 910m까지 확장 가능 등이다.
다른 개발 대상 지역인 포트 2000의 11번과 12번 선석은 안벽수심이 17m, 총 안벽길이는 700m. 36㏊ 면적의 개발 대상 부지는 아지와 오사카 부두처럼 철도와 도로, 강과 연결돼 있다. 이 지역의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 계획을 보면, GPMH가 안벽 건설과 준설, 부두 전면의 갠트리 크레인 궤도 설치(기초만)를 맡는다. GPMH는 또 준설작업으로 조성될 예비공간의 사용계획을 제공하고, 터미널과 도로·철도 네트워크, 빗물 배수관과 연결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된다.
한편, 르아브르항 쪽은 우리나라 인천항의 갑문 설계와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1977년 10월 인천지방해양수산청과 르아브르항만공사(PHA)가 자매결연 협정을 맺었다. 이후 인천항 관리·운영 주체가 인천항만공사(IPA)로 바뀌면서 우호 협력 관계가 약해졌다. 그러나 2007년 10월 첫 자매결연 30주년을 맞아 인천항만공사와 르아브르항만공사가 자매결연 주체 변경을 위한 조인식을 가졌다. 자매항 결연을 다시 맺은 것이다. 인천항만공사 출범 이후 중국 옌타이항과 말레이시아 포트켈랑에 이어 세 번째로 해외 항만과 맺은 결연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아시아와 르아브르항 사이의 물동량은 전년 대비 19.4% 증가했고, 한국과 르아브르항 간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선사는 14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