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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 수난시대


 이맘쯤 경남 남해에 가면 곳곳에서 빨래 말리 듯 생선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메기라는 물고기인데 남해에서는 겨울철 별미로 통한다. 시장에 가면 살아있는 물메기들이 다라 한 가득 채워져 있고 마치 열병식하듯 열을 지어 알몸으로 늘어서 있다.

 생선치고는 몸이 지나치게 통통한데다 눈이 너무 작고 지느러미도 작고 부실한 게 헤엄이나 제대로 칠 수 있으려나 싶게 생겼다. 그래서 옛날에는 생선 취급을 안 했고 잡혀도 보기 흉하다며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남해 사람들은 물메기를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물고기, 서민의 물고기라고 말한다. 물메기가 상품가치가 없던 시절 어촌서민들에게는 아주 요긴한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탕으로 끓여서 후루룩 마시기도 하고 남으면 말려서 구워도 먹고 된장을 발라 쩌 먹기도 하고, 물메기는 참 다양하게 서민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준 것이다.

 지금은 물메기의 몸값이 높아져서 현지에 가도 물메기탕 한 그릇에 1만원은 줘야 한다. 서울 등 도심지에서는 더욱 귀해서 1만원이 훌쩍 넘는다. 나는 거의 모든 물고기들을 즐겨 먹지만 물메기만은 먹지 못한다. 생긴 게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왠지 경쟁력 없어서 사회에서 밀려나는 루저같은 이미지인데다가 어울리지 않게 통통한 몸매가 오히려 식욕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집와서 남편에게 소박당하고 시어미에게 구박당하는 불쌍한 며느리같다고나 할까.

 어쩌면 물메기들은 인간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굼뜨고 흉한 이미지로 진화시켜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들이 물메기의 맛을 알아버렸다. 물메기 예찬론자들은 물메기탕을 겨울철 최고의 별미로 꼽는다. 씹을 것도 없이 단숨에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물컹물컹한 식감은 물메기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지인인 사장님과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곰치국을 시켜줬다. 탕으로 나온 흐물흐물해 보이는 고기를 보고 이것이 바로 물메기로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물메기를 강원도 지역에서는 곰치라고 부르는데 그 둔한 생김새를 빗대어 물곰 혹은 물텀벙이라고도 한단다.

 어차피 시킨 거 안 먹을 수는 없고 조심스레 먹어보니 예상대로 물컹물컹했고 예상대로 유쾌하지 않았다. 국물은 무척 시원했는데 국물과 고기 몇 점만 깨작거리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함께 한 사장님으로부터 “살은 국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고 뼈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어야 제맛인데 그 맛있는 걸 이렇게 많이 남기냐”며 타박을 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흐물흐물한 살을 후루룩 마시는 것도 내키지 않고 뼈를 아작아작 씹는 것은 더 내키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물메기에게 겨울은 전성시대이자 수난시대이기도 하다. 어촌시장에서 저 물메기들이 드문드문해지면 이미 봄이 온 것이다. 물메기들이여 그대들을 식탐의 대상으로 삼지않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만 견디렴. 봄이 그닥 멀지 않았음이며 시장좌판의 그대들 자리가 곧 도다리들로 채워질 것이니.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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