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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기전에 군산 앞 바다를 굽어 볼 일이다.

 “부여를 한 바퀴 돌려다가는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뫼 강경이까지 들이닥친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녓적이라 하겠다. (중략)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는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백산맥에서 차령산맥으로, 공주와 부여를 거쳐 군산에 이르는 물줄기처럼 1930년대 당시 군산 가는 길은 멀었다. 기차로 꼬박 8시간, 밤을 새서 달려야 아침에 군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차를 타건 기차를 타건 서울에서 출발하면 2시간 반 만에 군산에 도착한다.

 차 몰고 새만금 방조제가서 드라이브하고 회센터에서 회 먹고, 조류도감 때문에 요즘은 곤란하겠지만 금강철새조망대 가서 철새들 구경하는 등 군산에는 다양한 여행테마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찍고 군산을 다녀왔다고 하면, 군산 입장에서는 대단히 섭섭하다. 무엇보다도 군산은 한국 근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잠깐 시간을 내 군산을 찾는다면 과거 어느 도시 못지않게 번성했고 활기찼던 군산의 진면모와 정취를 고즈넉이 즐길 수 있다. 부지런을 좀 떤다면 당일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기차건 버스건 군산에 닿으면 우선 군산 내항으로 갈 일이다. 군산은 1899년 조선에서 일곱 번째 항구로 개항했다. 그 전의 군산은 전라도 옥구군에 딸린 조그만 포구에 불과했다. 개항과 함께 군산은 광대한 호남평야의 쌀들이 모이는 집산지가 됐고 어마어마한 양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쌀이 곧 돈이던 시절 돈줄을 따라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군산은 시끌벅적한 삶의 현장이 되었다.

 <탁류>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전성기 군산항의 상징물이 아직 내항에 남아 있다. ‘뜬다리’라고도 불리는 부잔교(浮棧橋)다. 부잔교는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서 배 대기가 힘든 군산항의 특성에 따라 고안된 인공시설물이다. 밀물 때는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수면만큼 자동으로 다리가 떠오른다. 군산항 개항 이후 3천톤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는데, 4기의 부잔교가 하루 1백50량 화차를 이용하여 호남평야의 쌀들을 일본에 반출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장관이었으리라. 부잔교는 현재 3기만 남아 있다. 이끼가 가득차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데 수십년 간 먹은 기름에 윤기가 자르르한 무쇠사슬은 아직도 건장하게 작동할 듯 하다.

 내항 인근에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공간이 있는데 시간이 없더라도 3층에 위치한 근대생활관만은 꼭 구경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군산의 옛 모습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게끔 상가와 등대, 역사, 극장 등을 똑같이 만들어서 현실감있게 전시해 놓았다. 군산의 옛 영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다.

 군산의 옛모습을 보고 나오면 자연스럽게 발길은 다시 내항으로 향한다. 내항에 가서 군산항 전체를 지긋이 왼편 끝에서 오른편 끝까지 천천히 굽어보시라. 물질과 탐욕과 권세와 사랑과 배신과 깨어진 꿈까지 탁류처럼 얼러 좌르르 쏟아내 버리는 군산 앞바다를 보며 자연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느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겨울여행이 되지 않을까. 아, 군산항은 겨울에 가야 한다. 이유를 대라면 할 말은 없지만 개인적 감상으로 겨울이 확실히 맞다.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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