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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아무데나 오지 않는다

 1982년 영국 가수 엘튼 존은 ‘Empty Garden’이란 곡을 발표했다. 두 해 전 자신의 집 앞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존 레논을 추모하는 노래였다. 엘튼 존은 뛰어난 뮤지션이자 행위예술가, 반전평화 운동가였던 절친 존 레논에게 어떤 화려한 찬사도 수식어도 붙이지 않았다. 그저 식물을 정성껏 돌보고 정원을 가꾼 세심한 가드너였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정원을 아름답게 돌봐온 최고의 정원사를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냐며 이 텅빈 정원으로 돌아와 다시 함께 정원을 거닐고 싶다고 간절히 노래했다.

 엘튼 존의 노래에 빗대지 않아도 영국에서는 실력있는 가드너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어떤 찬사보다 값진 것이다. 수천 명의 가든 전문가들이 활약하고 있고 사회적 지위와 보수도 대단히 높다. 그런 가드너들을 선망하며 가드닝을 실천하고 있는 아마추어 가드너들은 부지기수다. 한마디로 가드닝 자체가 생활의 일부고 가드닝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가드닝 선진국 영국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우리의 정원문화 현실을 돌아보자.

 부끄러운 고백 하나. 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난해 봄, 꽃과 나무가 좋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우연히 가게 된 하동 여행에서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어떻게 생긴 꽃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곤 생전 처음 꽃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내가 살아있는 이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것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규칙적인 조직생활도 해 보지 않았고 되는대로 널널하게 살아온 인생이건만 그런 나 조차도 늘 뭔가에 쫒기며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것이다. 나는 무엇에 팔려 꽃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는가. 소설가 이태준 선생 말씀대로 봄은 아무데나 오지 않는다. 꽃의 아름다움도 봄의 소중함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봄은 그냥 지나쳐 버릴 뿐이다.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인간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진정한 삶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창 밖에 핀 장미들을 즐기는 대신 지평선 너머 언젠가는 필 거라는 마술의 장미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인관관계론>을 읽지 않아도 이 말 한마디로 그는 우리에게 위대한 경각심을 불어넣어줬다. 도대체 언젠가 필, 필지 안 필지도 모르는 장미의 환상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 주변의 작은 한 평 땅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가 나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 위대한 사실을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깨달았다는 데에 꽃들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

 기초적인 원예 지식도, 가든디자인도 모르는, 그래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초보자일지라도 새 봄 꽃과 함께 하는 여유는 가져봄이 어떨가. 우리가 사는 공간 주변에는 멋진 화단이 아니라도 옥상, 베란다 등에서 텅빈 정원이 쓸쓸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투리 공간들에 갖가지 꽃과 나무들을 초대해 보면 어떨까. 한뼘 공간도 없다면 탁자에 꽃을 꽂은 작은 화병 하나로도 충분하리라.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식물과 한걸음 가까이 호흡을 같이 한다면 우리의 마음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한층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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