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물류업계가 중동을 주목하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이 잇따라 중동지역에 물류센터를 마련하면서, 중동이 글로벌 물류중심지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중동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데다 물류 인프라도 충실한 편이다. 미래는 현재보다 더 밝아 보인다. 중동 여러 나라들이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항만, 공항, 철도 등의 인프라를 확충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럽행 해항화물 대폭 증가 영국의 물류시장 조사업체 트랜스포트 인텔리전스(Transport Intelligence·TI)는 지난 3월 13일자 브리핑을 통해 중동지역이 “글로벌 물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고 짚었다. TI 분석을 보면, 그동안 중동은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운 중심지이자 항공기의 재급유기지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물류 인프라 개발은 소홀한 편이었다. 물동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도시 터미널에 집중하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전략에 따랐던 탓이다. 현재 상황은 달라졌다.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최신 시설에 낮은 부패도와 수월한 통관절차, 영공개방주의, 자유무역지대(FTZ) 지정 등 물류 중심지 구실을 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건을 갖춘 것이다.
걸프 국가들은 최근 들어 선박으로 운송된 화물을 항공기에 옮겨 실어 유럽으로 보내는 ‘해항(Sea to Air)화물’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중동에 견줘 항공 화물운송 생산성이 낮은 인도에서 해상을 통해 중동으로 화물을 수송한 뒤 유럽까지 항공으로 배송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지역에서도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두바이가 해공복합운송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두바이국제공항은 해항화물 전용 도크 7개와 수출입화물 및 부패성화물용 트럭 도크 56개를 갖추었다. 인근 제벨 알리(Jebel Ali)항, 라시드(Rashid)항과 6시간 내 컨테이너 보세 운송이 가능할 만큼 연계 시스템도 뛰어나다.
다만 두바이를 비롯해 중동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배송되는 항공화물 증가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공화물은 많지만, 유럽에서 중동으로 오는 항공화물이 부족해지는 ‘화물의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동의 해항복합운송 시스템을 활용해 유럽으로 화물을 수송하면 해운보다 일주일 이상 수송시간을 줄일 수 있는 덕분에 여러 기업들이 중동에 물류센터를 마련하는 추세다. 두바이의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처럼 물류 인프라가 우수한 곳에 생산기지와 물류센터를 갖추면 다양한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수송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TI의 브리핑을 보면, 글로벌 IT기업인 일본 캐논은 아프리카·중동지역 45개 시장을 겨냥한 물류센터를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에 설치했다. 캐논은 이 물류센터에서 95%에 달하는 제품의 지역화작업과 조립 등을 거친 뒤 해상으로 운송하고 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로 급성장한 중국 화웨이(Huawei)도 최근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에 물류센터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화웨이의 제벨 알리 물류센터에서는 인근 걸프 국가들과 파키스탄에 먼저 제품을 수송하고, 케나와 탄자니아를 포함한 아프리카로까지 수송대상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항만 ‘컨 처리능력’ 확대 TI는 중동이 물류거점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정학적 장점과 함께 해상물류 인프라와 기업 친화적 사고방식이 큰 몫을 했다고 짚었다. TI가 신흥시장의 물류 경쟁력을 수치화해 올해 1월 발표한 ‘EMLI(Agility Emerging Markets Logistics Index) 2014’를 보면, 과거 중동 국가들이 기업친화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사우디아리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등이 시장공존(compatibility) 부문에서 비즈니스·교역에 호의적인 결과가 도출됐다고 평가했다. 또 수송의 질적 인프라와 해상 수송의 범위를 나타내는 연결성(Connectedness) 부문에서도 아랍에미리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중동지역의 물동량 증가에 따라 이 지역의 물류 인프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크게 늘어나는 해운 및 항운 수요를 물류 인프라가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TI의 분석은 해운 인프라 개선 움직임은 활발한 편이고 전망도 밝지만 항운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동지역 주요 항만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물량은 4000만TEU가량이다. 각국의 개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10~15년 뒤 1억만TEU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 항운 물동량도 마찬가지다. 중동지역 주요 공항의 연간 화물처리 물량은 현재 800만t에서 2020년 1400만t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에선 중동의 여러 서브 공항들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와 아부다비 2개 공항만 글로벌 규모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개 가운데 최근 개발된 두바이 국제공항은 아직 규모가 작다. 하지만 화물 처리능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인 두바이 월드 센트럴 알 막툼(Dubai World Central Al Maktoum) 국제공항과 연결이 가능해 성장이 예상된다. 아랍에미리트는 항운뿐 아니라 해운 인프라 개발도 활발하다. 두바이의 제벨 알리항은 중동 최대 항만이다.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항보다 약 3배나 크다. 앞으로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아부다비 공항과 연결되는 칼리파(Khalifa)항은 2030년까지 컨테이너 처리능력을 1500만TEU로 늘리기 위해 확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생산시설은 물론 물류시설까지 포함된 칼리파 공업지대(KIZASD) 개발도 예정돼 있다.
중동의 물류센터들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의 부족한 수송 인프라를 보완하는 것이다. 지역 배송기지를 뛰어 넘어 아시아, 유럽, 북미에서 출발한 화물이 경유하는 관문 구실까지 한다는 의미다. 중동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직 교통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급성장하는 시장인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과도 가깝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이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릴수록 중동지역 물류센터들의 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글.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