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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길…


 트리아제(triage)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응급실의 규범같은 것인데 전시 야전병원의 트리아제에 따르면 작은 부상을 입은 병사를 먼저 치료한다. 빨리 회복시켜서 다시 전쟁터로 되돌려 보내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심각한 중상을 입은 병사는 안타깝지만 뒷전으로 몰린다. 평화시 일반 응급실에서는 반대로 된다. 중상을 입어 목숨이 위급한 환자를 일단 먼저 치료한다. 권력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자기 먼저 치료해 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은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선박이나 비행기 등 대형 교통수단의 비상상황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아이들과 여자를 먼저 구조한다는 ‘버큰헤이드호 전통’이다. 버큰헤이드호는 1852년 당대 최강을 자랑했던 영국해군의 수송선이었다. 병사들과 가족들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암초에 부딪혀 침몰위기에 처했고 승객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승객은 630명이었는데 구조선에 탈 수 있는 인원은 180여명에 불과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배의 책임자인 시드니 세턴 대령은 전 병사를 갑판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구조선에 아이와 여자들을 먼저 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먼저 살겠다고 구조선에 뛰어들면 모두가 동요되어 서로 뛰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가족들 만이라도 살릴 것인가? 모두가 함께 죽을 것인가?” 병사들은 대령의 말에 따라 아이와 여자들을 구조선에 태우고 모두 버큰헤이드호와 운명을 같이 했다.

 이 전통은 이후 발생한 타이타닉호 침몰 시에도 지켜졌고 현재까지도 긴급재난사고 시의 기본 매뉴얼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조하는 것은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에 미약한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배려’이자 이미 기성화된 사람들과는 달리 ‘새로운 사회구성원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교통수단사고 뿐만아니라 천재지변 등 위기상황에서도 이런 규범들은 적용된다.

 비상재난사태가 벌어지면 하나의 상식으로 통하는 기본사항인데 이런 기본과 원칙이 실종되어 빚어진 비극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이 아이들을 구하기는 커녕 먼저 구조선에 오른 것이다. 아직 사고의 전모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선장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선장 말고도 책임선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임무와 원칙을 방기해서 사고를 더욱 큰 참사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니 모두에게 다 최선의 효과를 바랄 수는 없다. 단 맡은 바 임무에 대해서 최소한의 원칙과 기본만은 지켜져야 한다. 원칙과 기본이 실종되면 어떤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지 안타깝게도 현실로 목도하는 슬픈 4월이 되고 말았다. 성과위주 성장으로 선진조국 앞당기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많이 팔고 스포츠로 세계를 제패하지 못해도 좋다. 다만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세월호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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