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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든 삶은 따라온다

 마루야마 겐지를 읽으면 왠지 내가 한참 잘 못 살고 있는 어설픈 인간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이 거기. 그래 너. 그렇게 어영부영 살면 안 돼!” 하는 듯한. <소설가의 각오>나 <천년동안에>도 어떻게 끝까지 읽어내긴 했지만 읽는 내내 쿠사리를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인생 뭐 있어?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식 헐렁함을 더 편안해하고 겐지 상은 아주 잊고 있었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덥석 사버렸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과연 마루야마 겐지답게 초지일관 꼿꼿한 어조로 일관하신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구급차 기다리다가 숨 끊어진다. 외로움 피하려다가 골병든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친해지려하지 말고 그냥 맘 편하게 욕 먹어라. 깡촌에서 살인사건 자주 벌어진다. 자기 몸 자기가 지켜야 한다. 급기야는 호신용 수제 창을 만들어서 강도를 만나면 주저말고 찔러라! 까지 꼼꼼하게 일러주고 있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고약한 노인네의 악담으로 들릴 수 있다. 폐쇄적이고 이중적 기질이 있는 일본과 한국의 현실은 다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우리 현실에서도 새겨볼 대목은 꽤 있어 보인다. 마루야마 겐지가 다종다양한 독설을 뱉어내면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은 바로 ‘홀로서기’이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살아오면서 진정 당신은 인간으로서 격을 조금이라도 높인 삶을 살아왔는가?” 허술한 인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허울좋은 목적이라도 시골생활은 최악의 충동구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엄격함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되새겨볼만한 말이다. 도시에선 정말 사람답게 살 수가 없을까? 그러려고 노력이나 해 봤던가? 도시엔 인정도 사랑도 없다고 야속해 하지만, 스스로가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에 굶주려 있다고 구차하게 징얼대는 건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마루야마 겐지는 가혹하게 묻는다. “당신을 시골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도시만 벗어나면 인간성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하는 귀농, 귀촌 유행에 대해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힐링을 생각하는 시골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노동의 현장이자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 가혹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도시생활이 패턴화된 사람들에게는 그 솔잎이 무관심하고 비정한 도시의 공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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