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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호에서 도시락 시켜먹기의 어려움


 난 평소에 그다지 바쁠 게 없는 사람이라 KTX를 탈 일이 거의 없다. 서울서 대구까지 두 시간에 가야할 이유가 전혀 없고 너댓시간 동안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면서 가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느긋하게 가려면 미리 바쁘게 서둘러야 한다. 새마을이나 무궁화가 KTX보다 오히려 귀해서 서둘러 예매하지 않으면 좌석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느긋한 열차여행을 즐기기 위해 서둘러 좌석을 예매해 무궁화에 올랐다. 장시간 기차여행의 백미는 역시 식당칸의 식사시간. 그런데 미리 도시락을 예약하지 않으면 도시락을 사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락도 미리 서둘러 예매를 해 뒀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칸으로 갔다. 식당이 아니라 무슨 카페라고 적혀 있는데 카페라기 보단 음, 무슨 피난 열차칸 같았다. 예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온 사람으로부터 중국에는 좌석 자체가 없는 그냥 컨테이너같은 기차칸이 있다고 들었는데 뭐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식탁 좌석은 물론 오락기계 자리까지 사람들이 다 차지해 앉아 자고 있고 테이블 밑에까지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래서야 달리는 열차에서 창밖을 보며 도시락에 맥주를 한잔한다는 낭만은 완전 물 건너 갔고, 도시락을 받아 부랴부랴 좌석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좌석에 와서 앉아도 난감함은 여전하다. 일단 1만원이 넘는 가격에 비해 도시락의 퀄리티가 현저히 후졌다. 그건 뭐 내 입맛이 까다로울 수도 있으니 패스. 더 큰 문제는 도시락이 반찬그릇과 밥그릇, 물 세 종목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무궁화 좌석에는 음식을 놓을 수 있는 트레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이 창가에 앉아서 반찬그릇을 창가에 놓았으나 창턱보다 반찬그릇이 넓어서 떨어질 수 있으므로 한 손으로 잡아줘야 한다. 그러니까 몸을 창가가 있는 왼쪽으로 비튼 자세에서 왼손으로 밥 그릇을 들은 채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창가에 놓은 반찬그릇을 지지하면서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먹어야 한다. 그나마 이 자세를 끝까지 유지할 수도 없다. 전자레인지에 갓 데워진 밥 그릇은 생각보다 많이 뜨겁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끔 뜨거운 밥그릇을 무릎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 반찬그릇을 지지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릇이 흔들리지 않게 지지해 줘야 한다. 밥을 먹는 동안 목이 메이면 안된다. 물은 비행기에서 주는 것처럼 뚜껑이 비닐코팅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자세에서 뜯기도 어렵고 한번 뜯으면 마땅히 놓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밥먹는 과정이 이렇게 난해한 건 트레이가 없을 뿐만아니라 좌석팔걸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팔걸이가 없으면 오른손 팔꿈치가 지지가 되서 그나마 좀 편할 수가 있는데 팔꿈치로 옆사람을 터치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더 소극적이고 어정쩡한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분명 KTX보다 좌석이 더 넓은데 왜 팔걸이를 안 해놓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뭐 비용 문제이겠지만, 무궁화호 타는 사람들은 그 정도 편의시설도 이용하지 못할만큼 홀대해도 좋다는 말인가. 뭐 폐차될 때까지 팔걸이 설치 안 하리라는 게 유력하지만 그렇다라도, 좀 느리게 가더라도 옛날 새마을호처럼 식당칸에서 여유있게 창밖을 보며 식사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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