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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범상한 뇌의 소중함

 1960년대 미국에 헨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간질환자였다. 병원에서는 그의 간질을 고치기 위해 뇌 속의 해마세포를 빨아냈다. 간질은 나아졌는데 그만 기억이 몽땅 날아갔다. 당시까지는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대외피질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

 수술 후 헨리는 아무런 기억도 못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게 통상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을 때 기억을 잃은 사람은 과연 그 이전의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게다가 혹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의 기억이 뇌 속에 대신 채워진다면?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이런 설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

 어쩌면 인간의 뇌는 기억이 전부다. 치매라는 것도 생리적인 무의식적인 작용으로, 원초적으로 포맷되어 있던 디폴트 상태로 의식이 돌아가는 거 아닐까. 불교에서 의식적으로 세속에서의 기억과 인연을 버리고 무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과 어느 면에서는 맥이 통할지도 모르겠다.

 좀 다른 얘기지만, 만약 약물이나 최면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의 안 좋은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주는 비즈니스가 지금의 성형외과처럼 성행할 수도 있겠다.

 뇌를 텅 비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이 뇌를 100% 다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개봉한 영화 <루시>는 이런 설정을 극단으로 밀어부쳐 가공할 뇌의 능력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간보다 뇌를 더 쓴다고 입증된 돌고래 뿐만아니라 어린아기 혹은 자폐나 발육이 떨어진다는 사람들도 인간이 규격화시켜놓은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어쩌면 더 능숙하게 소통하고 있을 지 모른다. 인간의 평상적 언어로 표현을 하지 못할 뿐.

 텅 비움과 완전한 채움. 과연 어떤 상태가 좋을 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보통 인간에게는 불편하거나 버거운 일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인간들에게 뇌의 20%도 채 쓰지 못하도록 설정해 놓은 조물주의 선견이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희노애락과 삶의 재미도, 한줄기 청량한 햇살에 취하는 것도 범상한 뇌가 있어 즐기는 것일 터, 지극히 평범한 뇌가 문득 고마워지는 가을 아침이다.

정리. 쉬퍼스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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