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쌀쌀해지는 이맘 때면 각종 매체 사회공헌 코너에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사랑의 연탄배달’이다. 연탄을 난방 및 취사연료로 사용하는 저소득층ㆍ취약계층 사람들에게 연탄을 기부하고 또 직접 배달을 해 준다는 좋은 취지의 행사이다.문제는 이 행사가 좋은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의례적 혹은 관례적으로 겨울철 사회공헌의 단골 아이템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체 혹은 기관의 대표자, 단체장 들과 지역 국회의원, 유지 등이 참여해 ‘훈훈한 온기를 나눈다’는 식의 멘트를 남기는 패턴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취약계층에게 연탄을 제공하는 기관 관계자 말에 따르면 연탄은 실물 혹은 현금이 아닌, 쿠폰으로 제공된다. 일정금액이 명시된 쿠폰인데 일부 사람들이 이 쿠폰으로 연탄을 구입하지 않고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깡’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서 금액을 낮은 단위로 잘라서 여러 장의 쿠폰으로 제공한다.연탄쿠폰을 제공받은 사람이 쿠폰의 금액만큼 연탄을 구입하면 연탄공급업자가 연탄공장으로부터 연탄을 공급받아 직접 집으로 배달을 해 준다. 그러니까 ‘사랑의 연탄배달’이라는 명목으로 줄을 서서 연탄을 나르는 행사는 엄밀히 말해 연탄을 사용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것
한국 최초(사실상은 대한제국부터)의 자동차에 관한 자료를 찾을 일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서치를 해 보니 고종이 1903년 재위 40주년 기념으로 미국 포드사에서 포드 모델A라는 오픈카를 사들인 게 한국 역사상 최초로 수입한 자동차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거의 다 블로그 등에서 떠도는 글이라서 공식적인 근거가 없었다. 이미지들도 그 출처가 불분명했다.국립고궁박물관에 문의를 했더니 고종이 타던 자동차는 없고 순종이 타던 자동차만 두 대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인터넷을 서치하니 2009년 하이서울페스티벌때 덕수궁에서 고종 관련 전시를 할 때 고종의 어차가 전시된 적이 있다고 어느 블로그에 사진까지 올려져 있었다.덕수궁에 전화를 해 전시담당자를 찾아 문의를 하니 아마 서울시 모처 박물관이나 고궁박물관일 것이라고 한다. 대행사를 통해 진행했으니 담당자가 정확한 루트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문의를 했다. 메시지로 답변이 왔는데 그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고 했다. 고궁박물관에 다시 전화를 하니 자기들이 아는 바 고종의 어차는 없다고 했다.다시 인터넷을 꼼꼼히 서치해 보니 지난해 진해군항제 행사 때 함께 열린 세계클래식카 전시회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쾌적하고 안전한 관광지로 꼽히는 나라다. 다양한 테마의 리조트와 호텔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을 비롯한 관광지와 세계최대 규모의 인공정원 가든스바이더베이 등 다양한 휴양, 레저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서 전세계로부터 사계절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금융 허브이자 대규모 항구를 낀 물류 중심지로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경제력도 싱가포르의 이미지에 큰 일조를 하고 있다. 마리나베이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레이저쇼를 더욱 환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마천루 야경들이 이러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할 수 있다.그렇게 해서 ‘부유하고,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풍부한 싱가포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고, 전세계 각국에서 싱가포르를 소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단위나 연인들끼리의 휴양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가 싱가포르이다.그런데 부유하고 환상적인 싱가포르의 이면에는 독특한 노동시장 구조가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인구의 7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중국계는 말레이계 여성과 결혼한 중국인들의 후손인 ‘페라나칸’을 말하는데
AIIB는 2013년 10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처음 계획을 제시한 후 2015년에 역내 37개국 역외 20개국을 창설멤버로 해 출범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에는 운영이 시작될 예정이다. 아시아 지역의 사회간접자본 개발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AIIB는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 수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다자간 개발은행(MDB)에 대항하여 중국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이런 중요성을 인식해 지난 2015년 9월 18일 기획재정부, 한국국제경제학회 주최로 ‘AIIB 설립에 따른 아시아 인프라시장 확대와 한국개발협력의 대응방안’ 세미나가 개최됐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의 주제발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인프라 투자는 2015년 연간 4.7조 달러 수준에서 2020년에는 연간 9조 달러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세계 인프라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에는 47.8%에서 2025년에는 58%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한국, 중국, 몽골, 북한 등 다양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이 있는
6년여를 다소 막 다룬 노트북의 키판이 고장나서 동급의 새로운 컴퓨터 가격을 알아봤다. 가격이 너무 부담이 되어 수리 업체를 찾았더니 신품의 10%도 안 되는 비용으로 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수리를 맡겼더니 비용 청구서와 함께 자판이 바뀐 노트북 그리고 6년여를 함께 했던 예전이 자판이 통째로 뜯겨진 채 박스에 담겨져 왔다.이런 배려는 나중에 키판 교체할 때 필요하면 빼서 사용하라는 취지라고 수리업체 담당자는 설명했다. 나중에 자판 키 하나를 재활용할 확률은 경험상 0.1%도 안된다는 생각에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그냥 창고에 모셔두기로 마음을 바꿨다.타이핑 강도가 평균보다 센 편인 내 열 손가락 강타를 견뎌내며 6년여 세월동안 동고동락해 온 동료를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우선이었지만, 수리업체 담당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6년을 사용했지만 아직 시스템 상에 전혀 문제가 없고 일상 업무에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이기 때문에 작은 고장을 이유로 컴퓨터를 교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판 키 하나가 문제라면 해당 자판만 바꾸면 정상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수리 담당자의 말을 듣고 그 동안 컴퓨터를 대해 온
서울 종로구 교남동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뜬금없이 고풍스런 가옥을 만날 수 있다. 딜쿠샤(DILKUSHA)로 불리는 서울의 명소 중 하나다. 딜쿠샤란 힌두어로 이상향,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런 멋진 집을 짓고 의심심장한 이름을 붙인 사람은 알버트 테일러(1875~1948)라는 미국인이었다.알버트 테일러는 UPI통신의 전신인 UPA 통신사 특파원으로 한일합방이 되기 전 조선 땅에 들어왔는데 1923년에 이 건물을 지었다. 그는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3.1 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우호적이었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혐의로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고 한다.딜쿠샤는 개항 후 지어진 서양식 건물 중에서도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쌓는 방식을 프랑스식 쌓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매우 특이한 형상이라고 한다. 딜쿠샤 정초석에는 'DILKUSHA 1923, P.S.ALM CXXVII-I'라고 새겨져 있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딜쿠샤는 근대문화유적지지만 현재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일종의 공동주택으
요즘이야 칭다오(靑島)맥주를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다. 중국식당은 물론이고 마트, 편의점 등에 가면 얼마든지 칭다오맥주를 구입할 수 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칭다오맥주는 대부분 초록색 병 혹은 캔에 담긴 ‘일반적인’ 칭다오맥주다.그 ‘일반적인’ 칭다오맥주가 한국에서 먹을 때와 칭다오에서 먹을 때 맛이 다르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중국 칭다오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다. 똑 같은 맥주가 설마 나라에 따라 맛이 다를까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같은 호프와 효모를 사용하더라도 물이 다르면 맥주의 맛이 달라진다고 하니 일견 수긍이 가는 말이다.그렇다면 칭다오의 물이 얼마나 좋기에 맥주의 맛이 달라질까. 칭다오를 잘 아는 사람들은 칭다오에 가 보면 안다고 한다. 칭다오는 과연 물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맑은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깨끗한 천연 광천수가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칭다오맥주 맛에는 좋은 물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칭다오맥주 탄생의 배경이 된 중국의 근대사의 애달픈 향취도 섞여있지 않을까.칭다오는 불과 120여년 전만해도 지금같은 도시가 아니라 중국의 변방에 불과했던 곳으로 조용하고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청나라 말기인 1897년 독일의 조계지가 되면서
아르바이트(Arbeit)는 주로 육체적 노동을 뜻하는 독일어다. 이 외래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본업 외에 하는 부업을 의미하는 우리말처럼 사용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한기 때 새끼를 꼬는 것이나 닭 등 작은 가축을 키워 부수입을 올리는 것 등도 아르바이트에 해당된다.과거 정식 직업이 없던 대학생이나 청년층이 하던 아르바이트는 학원비 혹은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거나 신문배달을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니까 본업 외에 부업을 의미하면서 ‘임시직’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었다.그런데 요즘의 아르바이트는 과거의 아르바이트 개념과 사뭇 다르다. 아르바이트에서 ‘알바’로 명칭이 축약됐을 뿐만아니라 ‘임시직’이라는 전제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알바를 고용하는 개별 고용주 입장에서는 임시직일 수 있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고용인들 중 상당수가 그저 ‘알바’로서의 지위가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편의점에서 마트로, 마트에서 피자집으로, 피자집에서 술집으로, 술집에서 문서보조로, 문서보조에서 편의점으로. 일의 종류와 성격도 가지각색인 이 무한궤도에서 벗어나 정규직으로 편입해 들어가면 행운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알바 시장에서 임시직을
해운대, 광안대교, 갈매기, 남포동, 자갈치, 태종대, 롯데자이언츠. ‘부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부산을 잘 아는 사람들이 꼭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언덕과 비탈’이다. 바다와 항구도시이면서 부산은 고지대가 많은 곳이다. 그 대표적인 고지대 마을이 사하구 감천동 감천마을이다.감천마을은 구불구불 미로처럼 열리고 또 열리는 작은 길들이 모여 가가불이(街家不異)한 연출을 자아낸다. 작은 집들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를 달리하며 그림자놀이를 한다. 감천마을의 매력은 이렇게 바다와 태양 등 자연과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처럼 존재한다는 점이다.감천마을의 정식명칭은 감천동 문화마을로 통한다. 때로는 벽화마을, 레고마을, 동양의 산토리니 혹은 태극도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이 곳에 처음 터를 잡은 사람들이 태극교도들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천마산 중턱의 국유지였는데 한국전쟁 후 1955년 무렵부터 태극도 신자들이 하나 둘 정착하면서 일종의 신앙촌으로 마을이 형성됐다.감천마을이 부산시로 편입된 것은 부산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격된 1995년부터였다. 그러나 여전히 부산 외곽의 낙후된 마을이었던 감천마을이 변신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요즘은 인천공항으로 통하는 영종대교가 있어서 영종도는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종도의 을왕리 해변 역시 해수욕장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수도권 사람들에게는 그저 차 몰고 휑하니 가서 조개구이나 칼국수 먹고 오는 반나절 나들이 코스로 여겨진다.그러나 영종대교가 개통되기 전 영종도는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엄연한 섬이었고 을왕리 역시 조개구이 먹는 곳이 아니라 수영하고 야영도 하는 어엿한 해수욕장이었다.교통시설이 좋지 않았던 60~70년대 수도권에 살던 사람들에게 인천 특히 영종도 을왕리로 들어가는 것은 아주 큰맘 먹고 행하는 여행이었다고 한다. 기차 혹은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을왕리 해변의 낙조는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고 그 세대들은 추억한다.그런 분들에게는 월미도에서 영종도 구읍뱃터로 향하는 배를 타고 을왕리를 찾아가보길 권한다. 15분 정도 걸리는데다 딱딱한 바닥으로 된 좌식 객실이라 차편보다 불편하겠지만 영종도가 뱃길이 더 익숙한 섬이라는 사실을 불현 듯 알게 된다. 왕년에 영종도에 배를 타고 들어가 데이트를 즐겼던 추억이 있다면 그 아름다운 기억의 편린을 살짝 불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을
1979년 대학가요제 출전곡에 '영랑과 강진'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김학래의 '내가'가 대상을 받았는데 이 노래도 금상인가 은상을 수상했던 것 같다. 아마 전남대 학생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좋아했다. '영랑과 강진' 마치 수줍게 연애를 시작하는 선남선녀의 이름같지 않은가. 영랑 김윤식의 고향이 전남 강진이란 사실도 이 노래를 통해 처음 알았다.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그곳 모란이 활짝 핀 곳에영랑이 살아서 숨쉬고 있네~참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다. 그러나 노래가 발표된 후 불과 몇 개월 후에 광주에선 초유의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으니 노래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어쨌건 이 노래를 들은 후, 나는 언젠가 강진에 가 보자는 생각을 했다. 왠지 나도 어설픈 시 한자락 지을 수 있을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어언 30여년이 흐른 후 강진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읍내는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터엉 비어 있었다. 강진이 바닷가 마을이란 걸 알려면 마량으로 가라는 택시기사 말을 듣고 남쪽 마량항으로 향했다. 먹어 본 중 가장 맛있었던 전어무침을 내 준 식당도 좋았고, 조그만 선술집을 운영하는 시인같은 사장님
부산을 대표하는 노래이자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응원가로도 잘 알려진 대중가요 ‘부산 갈매기’에는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하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1982년에는 부산 갈매기에 이런 아련하고 낭만적인 이미지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를 넘어서 국내 최대의 문화관광도시로 자리잡으면서 부산갈매기들은 사시사철 해안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쫓아다니며 새우깡을 얻어먹고 사는 처지로 전락했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에는 몰려드는 갈매기 사진을 찍기 위해 새우깡으로 유인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새우깡 뿐만아니라 빵, 어묵 등 사람들이 먹는 간식을 받아먹은 갈매기들이 소화 계통에 문제가 생겨 고통을 겪는다고도 한다.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더라도 갈매기가 새우깡을 먹다니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갈매기는 모름지기 푸른바다를 유영하며 멸치나 작은 생선을 잡아먹거나 적어도 활어위판장에 떨어진 잡어 정도는 먹고 살아야 한다. 적어도 그래야만 갈매기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 품격을 유지하고 사는 갈매기들을 남해 미조항에 가
연태를 모르는 사람은 연태가 명태 사촌 쯤 되나 말한다. 연태를 아주 조금 아는 사람은 양꼬치를 먹을 때 연태 고량주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태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은 연태가 산동반도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황해와 발해가 만나는 해안을 접한 항구도시로 수 많은 명소들이 있는 관광지이자 포도주로 유명한 도시라고 말한다.연태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은 연태를 외지 투자가 활발하고 한국기업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즈니스 요충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명도 현지 발음을 따라 ‘옌타이’라고 부른다. 이제부터는 연태를 옌타이로 부르기로 한다.옌타이에 특히 한국기업들이 많은 이유는 한국과 거리가 비교적 가깝고 물류시스템 등 무역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동포 인재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로 LG, 포스코, 두산, 대우조선 등 대기업 뿐만아니라 다양한 아이템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옌타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옌타이 당국의 한국기업 비즈니스 유치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현재 옌타이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은 줄잡아 3천여개를 헤아리고 교민 수도 3만명을
지난 8월 6일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식이 이집트 이스마일리아에서 있었다. 한국정부에서는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을 특사로 파견해 “제2 수에즈 운하 개통을 통해 이집트가 세계 해상 운송의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이집트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는 대통령의 경축 메시지를 전달했다.제2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운하 통과 시간이 18시간에서 11시간으로 단축되고 대기시간도 평균 8~11시간으로 줄어들어 상당한 해운물류비 절감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제2 수에즈 운하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그대로 이집트의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갈 지는 미지수다. 모든 운하들이 그렇듯 운하의 경영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과거 운하를 둘러싼 각축전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열강들의 리그였던 반면 이번 제2 수에즈 운하에는 중국이 가세했다는 점에서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착공을 시작해 1녀여 만에 개통한 제2 수에즈 운하 공사에는 약 84억 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약 9조원에 이르는 공사비는 이집트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거금이다.다른 돈 많은 나라들 특히 서구의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2013년
현재 한국의 중장년층들에게 파나마라는 나라가 알려진 것은 아마도 1977년 홍수환 대 카라스키야의 복싱경기 때였을 것이다. 홍수환은 당시 10살이나 어렸지만 강펀치를 자랑했던 파나마의 카라스키야에 한 회에 4번 다운당하고도 KO승을 거둬 ‘4전 5기’의 신화를 쓰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당시 초ㆍ중학생들었던 현재의 중장년층들은 파나마를 그렇게 4전 5기의 장소로 기억했다가 후에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파나마가 운하로 유명한 국가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런데 그 유명한 ‘파나마 운하’는 홍수환이 4전 5기 신화를 쓰던 1977년에는 파나마의 소유가 아니라 미국 소유였다.파나마 운하는 그 엄청난 규모와 물동량만큼 길고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다. 파나마 운하를 최초로 계획한 사람은 16세기 스페인 국왕 칼를로스 5세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300여년 후인 19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인들이 운하개발에 본격 착수했지만 실패했고, 이어 미국이 개입하여 마침내 1914년 운하를 완공했다. 당시 파나마는 콜럼비아에서 통치하고 있었는데 콜럼비아가 미국의 운하 공사를 반대하자 미국은 파나마 독립운동을 지원해 콜럼비아로부터 독립시켰다.파나마를 독립시키면서까지 운하 건설에 공을 들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