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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주택에서 존폐의 기로에 처한 딜쿠샤의 운명


 서울 종로구 교남동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뜬금없이 고풍스런 가옥을 만날 수 있다. 딜쿠샤(DILKUSHA)로 불리는 서울의 명소 중 하나다. 딜쿠샤란 힌두어로 이상향,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런 멋진 집을 짓고 의심심장한 이름을 붙인 사람은 알버트 테일러(1875~1948)라는 미국인이었다.

 알버트 테일러는 UPI통신의 전신인 UPA 통신사 특파원으로 한일합방이 되기 전 조선 땅에 들어왔는데 1923년에 이 건물을 지었다. 그는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3.1 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우호적이었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혐의로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고 한다.

 딜쿠샤는 개항 후 지어진 서양식 건물 중에서도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쌓는 방식을 프랑스식 쌓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매우 특이한 형상이라고 한다. 딜쿠샤 정초석에는 'DILKUSHA 1923, P.S.ALM CXXVII-I'라고 새겨져 있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딜쿠샤는 근대문화유적지지만 현재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일종의 공동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세대도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것 정도는 허용이 되지만 시끄럽게 떠들거나 집으로 마구 들어가는 행동은 금지되어 있다.

 한때 서양식 호화주택으로 지어졌다가 주인이 바뀌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딜쿠샤는 현재 그 고풍스런 자태를 유지한 채 서민들의 삶터가 되고 있다. 서울에 보존되어 있는 근대 건물들은 꽤 있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건물은 딜쿠샤가 유일하다. 딜쿠샤 주변을 거닐면서 딜쿠샤가 겪고 보았을 백여년 가까운 격변의 세월을 잠시 느껴보는 것도 서울 강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재 딜쿠샤의 현실은 그렇게 편안하고 고풍스럽지 않다. 건물 사용자들의 무단입주 문제로 관계당국들이 갈등을 겪고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딜쿠샤를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하고 있지만 거주자들이 살고 있는 이상 문화재 지정이 어려운 형편이다.

 딜쿠샤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는 관리가 거주민들 때문에 노후된 딜쿠샤의 완벽한 보수관리가 어렵다고 한다. 이들의 이주대책이 시급한데 자산관리공사에 물려있는 변상금만 2억원이 넘는다. 현재 이 변상금과 이주대책을 놓고 서울시와 자산관리공사 등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어 문화재로 영원히 서울에 남을 것인지 보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지 딜쿠샤는 현재 중요한 운명의 기로에 서 있다.

 딜쿠샤는 사직공원으로 향하는 사직터널 위쪽 빌라들 사이에 옴폭하니 가려져 있어서 찾기가 좀 애매할 수도 있다. 권율장군 집터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바라고 찾아가는 편이 찾기 수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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