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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버스좌석의 창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창가에 앉은 사람만이 아니라 옆 통로 쪽에 앉은 사람 그리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 주변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창가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열 때에는 최소한 옆사람에게는 “창문을 열어도 되나요” 양해를 구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창가에 앉은 사람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창문을 확 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건 뭐 너무 덥거나 답답해서 그렇다고 친다. 그럴 경우 옆에 앉은 사람이 “내가 감기가 걸려서 그러는데 창문을 닫아주실 수 있나요?” 요청할 권한도 마땅히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절차와 매너(라기보단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가 종종 아주 당연하게 무시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주 오래 전 옆 사람이 다짜고짜 창문을 열길래 추운 나는 추우니 문을 조금 닫아줄 수 있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기분나쁘다는 듯 후, 한숨을 쉬고 거칠게 창을 닫아버렸다. 무서웠다. 그리고 몹시 불쾌했다. 그 이후로 난 옆 사람이 동의 없이 마음대로 창문을 열면 그냥 참거나 못 참겠으면 조용히 자리를 일어나 다른 곳으로 피한다.

 개방형 헤드폰을 쓰고 옆에 사람 귀에도 들릴 정도로 음악을 듣는 것, 주변사람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 등 다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정중하게 자제를 요청하면 대부분 니가 뭔데 참견이라는 투로 기분나빠 하거나 화를 낸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말 안 하고 조용히 피하곤 한다.

 예전에 사무실 앞에 있는데 한 청년이 개똥을 뉘고 치우지 않고 그대로 가려고 했다. 저기 개똥 치우고 가셔야죠, 얘기를 했는데 그 청년은 피식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봤다. 마치 안 치우겠다면 어쩔건대, 하는 투였다. 키도 나보다 크고 근육질이었다. 난 싸움이 벌어질까 무서워서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데 같은 건물에 있던 남자가 나와서 사태를 파악하고는 험한 욕을 해댔다. 그러자 그 청년은 순순히 개똥을 치우고 치우는 것이었다.

 너무 쉽게 사태를 수습한 같은 사무실 남자는 말을 안 듣거나 우습게 여기면 똑 같이 폭력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나에게도 그 같은 포스가 풍겼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을 때 군말없이 개똥을 치우거나 이어폰 볼륨을 줄이거나 창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우스우면서 서글펐다. 아주 간단한 상식만 지키면 아무 일 없을 것을 왜 쓸데없이 인상 찌푸리고 험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때 그 건장하면서 야비한 개똥청년을 보고 이런 공상을 한 적이 있다. 시추 한 마리의 똥으로 시작해서 복수심이 복수를 낳고 건달들까지 고용돼 활극이 벌어지는 만화같은 황당한 이야기. 웃고 넘길 가공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는 무례함과 화,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크고 작은 활극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그게 한국인 특유의 역동적 에너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겁 많고 큰 소리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불편하기만 하다.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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