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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로 보는 韓 사회시스템의 부재


 경기가 어렵긴 어려운지 극장가의 한국영화들은 복고풍 일색이다. 그 중 가장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작품이 <국제시장>이다. 한국 현대사의 어려웠던 시절을 관통해 온 세대들의 고단한 일생과 회한은 영화를 통해 충분히 묘사가 되었으니 여기선 잡시 접고 조금 다른 각도로 영화 이야기를 해 보겠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성장해 왔을 극한의 경쟁심리와 ‘하면 된다’로 표현되는 한국사회의 시스템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흥남철수 작전에 사용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최대 승선인원이 2천명이었다고 한다. 이 배에 14,000명의 피난객들이 올라탔다. 무기들을 다 내렸다고 해도 엄청난 과적상태였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기살기로 배에 올라탔다. 떠밀리거나 가까이 가지 못해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십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미군은 철수하면서 흥남부두를 폭파시켜버렸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이틀 반나절을 항해한 후 거제도에 닿았는데 기적적으로 피난민 전원이 생존했고 아기들까지 태어났다. 미군은 아기들에게 김치1호 김치2호 등으로 별명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1만 4천여명 전원 생존은 경이로운 사건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1만 4천여명 이상 되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가고 규정을 어겨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먼저 올라 탄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한국식 생존방식의 전형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실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독 광부로 파견된 주인공들이 사고로 매몰되는 장면이 나온다. 광산 책임자는 더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구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광산 일을 해 본 사람 아니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는 판단이다.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무리하게 구출 시도를 하면 더 큰 인명사고와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락상 매몰된 광부가 한국인이라서 구출을 안하려했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무모하게도 삽과 곡괭이를 들고 무력으로 뚫고 들어가 주인공들을 구출한다. 물론 민족주의성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기 위한 설정이었다는 것은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지만 난 이 장면이 한국사회에 만연된 ‘시스템의 부재’가 버젓이 합법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읽혔다. 시스템 따위 필요없이 ‘하면된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고와 희생을 당했고 지금도 그 위험성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영화는 괴팍한 노인이 된 주인공 덕수가 웃고 떠드는 가족들을 피해 자신의 방에서 홀로 아버지의 환영을 만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덕수의 아내 말대로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오지 못한 한 인생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흘리는 눈물이다. 이로써 노인 덕수는 가슴에 맺친 응어리를 풀 수 있고 비로소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국제시장의 꽃분이네를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각박한 시절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 온 이 땅의 많은 덕수들이 이제 쯤 가슴 속 응어리를 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며 영화는 그들을 어루만진다. 그와 함께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왔던 극한의 경쟁논리도 그만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불합리한 시스템과도 작별할 수 있어야 그 분들의 무거운 짐도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닐까.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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