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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의 오묘하고 명쾌한 맛

 소한 대한도 지나고 입춘이 다가왔는데 아직 날씨는 쌀쌀하기만 하다. 향긋한 봄나물 보다는 아직은 뜨끈한 찌개 국물이 더 그리운 때이다. 한국인들만이 먹는 국물 있는 찌개는 별다른 레시피라고 할 거 없이 그냥 재료들을 넣고 끓이는 게 포인트인데 그 끓이는 과정이 단순해 보이면서 오묘하기까지 하다. 특히 평소 요리를 잘 안하던 남자들이 찌개를 끓이려면 그 단순함과 오묘함과 명쾌함 사이에서 헤매기 일쑤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검사가 아내와 전화 도중 말을 돌리려고 “왜 내가 끓인 찌개는 당신이 끓인 것처럼 맛이 안 나냐?”고 묻는다. 아내는 “그냥 계속” 끓이라고 말한다. 그 검사는 “계속 끓여? 그게 다야” 반문하며 의아해 하지만 아내는 태연하게 계속 끓이라고만 말한다. 영화 <이끼>에서도 이 명대사가 나왔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이끼>에서 본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찌개의 맛에 관한 가장 명쾌한 답 중 하나니까.

 된장찌개는 그 동안 좀 끓여봐서 어지간한 식당 된장찌개보다 훨씬 맛있게 끓일 자신이 있다. “그냥 푸욱” 끓이면 된다. 어머니 말로는 “팔팔” 끓이면 된다고 한다. 문제는 김치찌개인데 아무리 맛있는 김치로 끓여도 맛이 안 나는 것이다. 김치찌개에 관한 한 인정할 만한 솜씨를 가진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그냥 팍팍” 끓이라고 한다. 모호하지만 명쾌하다. 김치찌개를 잘 하는 단골 고깃집 아주머니는 “그냥 깊게” 끓이라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역시 명쾌하다. 그밖에 “뭉근하게” “진득하게” “바짝” 등등 계량화할 수 없는 애매한 표현들도 많이 사용된다. 이러니 찌개들은 정확한 레시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만드는 사람의 감에 따라 다 달라지는 것인데 그에 따라 국물 맛도 다양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팔팔 갓 끓여낸 찌개는 대개 “시원한” 혹은 “얼큰한” 맛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식당에서는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을 유지하기 위해 바짝 졸여진 국물을 몇 십년 동안 계속 우려가며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찌개 혹은 탕의 맛은 “뭉근한” 혹은 “깊은”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다양한 찌개와 탕의을 한국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원래 국물문화가 나눔의 문화 아닌가. 오죽하면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 야박한 상황을 “국물도 없다”고 표현했을까.

 따끈한 국물이 그리운 계절,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에 연연하지 말고 일단 냉장고를 뒤져 있는 재료로 찌개나 탕을 끓여보는 것이다. 보통 한국 가정이라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정도는 상시 끓일 수 있을 정도로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다. 고기 등 더 많은 재료를 넣으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일단 팍팍이건 팔팔이건 푸욱이건 자기 감을 믿고 끓여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 친지들 혹은 동료들에게 그 국물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것이다. 찌개의 오묘한 맛과 함께 하는 후끈한 입춘행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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