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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물에 그 밥


 그 나물에 그 밥. 널리 쓰이는 관용구로 사전적 의미는 “서로 격이 어울리는 것들이 짝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좀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전보다 나을 게 없는 상황일 경우 다소 비관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 새로운 인물이 요직에 기용되었을 때 새로울 게 없거나 별로 바랄 게 없을 때 종종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표현한다.

 언제부터 이런 부정적 의미가 깊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사실상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 자체는 그렇게 나쁜 말이 아닌 거 같다. 우선 나물이란 음식 자체가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친숙한 먹거리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가을 햇볕에 말려 이듬해 겨울까지 비축해서 먹곤 했다.

 꽃 피는 봄에는 산에 들에 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려 많이 먹을 수 있었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먹기가 힘든 음식이었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에는 삼색나물이라고 해서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를 꼭 상에 올리고 그밖에 무, 숙주, 콩나물 등 갖가지 나물을 함께 무쳐 먹는 게 전통 관습이 되어 있다. 영남지방에는 기제사밥이라고 해서 나물무침에 국물을 부어서 국처럼 먹기도 한다.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명절에는 대부분 집에서 갖가지 나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매일 나물만 해서 먹어도 며칠 혹은 한달 이상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설날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 오면 또 보름나물이라고 해서 나물을 해 먹는다. 대보름에 먹는 나물은 명절상의 삼색나물보다 좀 더 가지수가 많고 전문적이다. 고사리와 도라지 외에 호박, 박, 가지, 버섯, 고비, 시래기, 고무마순 등 9가지 이상의 다양한 나물들을 마련한다. 이때 먹는 나물들은 그 전해 가을에 채취해 손질한 후 말려 놓았다가 해 먹는 묵은 나물로 진채라고 한다.

 요즘이야 집에서건 식당에서건 사시사철 나물 반찬을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말리고 손질하고 비축해서 먹던 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도 풍성한 나물반찬에 밥을 먹을 수 있는 명절같은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라는 덕담아니었을까.

 설 명절이 지난 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물반찬이 냉장고에 건재하고 있다. 그야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을 열흘 이상 먹었는데 이상하게 그닥 질리지 않는다. 따로 상 차리기 번거롭고 간초롭게 한끼 먹기엔 나물비빔밥만한 게 없다. 사실 집에서 정성껏 만든 나물반찬이나 비빔밥이 아쉬울 때는 어디서 사 먹을데도 변변치 않은 게 사실 아닌가. 어디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귀하고 질리지 않는 나물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도 부정적인 의미를 벗고 늘 한결같이 친숙하고 편안한 상황을 일컫는 말로 명예회복을 하면 좋겠다. 그 나물에 그 밥. 나쁘지 않다.

글.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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