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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으로 밀렸지만 가치있는 장인의 숨결


 평소에 쓰던 카메라 후래쉬(정확한 명칭은 스피드라이트(speed light)이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통칭해 쓰이는 후래쉬라고 쓰기로 한다.)가 고장이 났다. 기계 성능 자체의 고장이 아니라 카메라 바디에 접촉하는 핫슈 부분의 플라스틱이 깨져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니콘의 SB-25라는 제품인데 중고로 산지 15년 정도 됐으니 그 이전까지 합하면 아마 20여년은 현역 생활을 했을지 싶다.

 이 후래쉬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 필름 카메라에 맞춰 출시된 제품이라 같은 니콘이라도 디카에는 정확하게 매칭이 되지 않는다. TTL은 기능도 안되고 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도 쓸 수 없다. 주변 광 상태를 보고 그때 그때 카메라 노출을 맞춰주면서 완전 수동으로만 써야 한다. 따라서 오래 동안 손에 익은 나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찾아보면 5만원도 안되는 가격이고 오래된 필카 바디와 함께 10만원 정도에 팔리기도 한다. 그런데 왠지 같은 제품이라고 해도 다른 중고를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기르던 말티즈가 죽었을 때 다른 말티즈를 산다고 그 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수십만원을 들여서 디카와 호환이 되는 신형 자동 후래쉬를 사기도 주저스럽다. 사진을 적잖이 찍어대니 후래쉬는 있어야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결정을 못하고 있다가 옛날 필카 시절 드나들던 카메라 수리점 생각이 났다. 어떤 기종의 카메라도 다 고쳐주곤 해서 명물이 됐던 곳이다. 밑져야 본전이겠다 싶어서 예전 기억을 더듬어 10여년 만에 종로구 예장동 카메라ㆍ시계 수리 골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골목에 있던 상점들이 다 종로의 새로운 건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계와 예물을 하는 보석상들과 카메라와 전자제품을 다루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건물 상가 한 켠에서 예전부터 친숙하던 간판을 발견했다. 수리가 가능하냐고 하니까 제품을 들여다보시더니 마침 부품 제고가 있다며 바로 후래쉬 핫슈 부분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후래쉬의 핫 슈 부분에는 카메라 바디와 맞물리는 접점이 총 다섯 개가 있는데 작은 금속으로 된 이 부분을 빼서 새로운 부품에 집어넣는 과정이 보기에도 만만치 않았다.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여 마침내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끼우고 테스트 발광에 성공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지고 박수가 나왔다. 이 간단해 보이지만 정밀한 작업의 보수는 단돈 2만원.

 버려질뻔한 기계가 저렴한 가격에 신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수리점을 나왔는데 밖에서 보이는 건물이 무척 황량해 보였다. 예전 복잡복잡한 골목에 있을 때는 다소 무질서해 보이긴 했지만 훨씬 더 전문가다운 느낌도 있었고 그냥 눈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런 아우라가 사라졌고 과거의 활기찬 모습도 찾을 수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카메라를 평생 쓰는 기계로 다루던 장인들이 자꾸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카메라가 소모품이 된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씁쓸했지만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있는 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앞으로 고장난 기계들 함부로 버리지 말고 좀 불편하더라도 고쳐서 쓰면서 장인들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해야겠다. 기계도 살리고 돈도 절약되고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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