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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물류로 제시하는 한반도 평화와 도약의 길

남북물류포럼 김영윤 회장

 “제가 독일 브레멘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취업해 있을 때 독일 통일을 접했습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굉장한 힘을 느꼈습니다. 한국으로 오니, 통일연구원이 출범했고, 창설멤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그 때, 제 인생을 한반도 통일에 바치겠노라 다짐했지요.”






 이렇게 시작된 경제학자 김영윤 박사의 통일문제와의 인연은 통일연구원에서의 임기는 끝났어도, 그의 다짐대로 13번째 해를 맞이하는 남북물류포럼을 통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남북관계는 제가 통일연구원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 보다 더 안 좋아요. 독일에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통일에 큰 역할을 했어요. 베를린이 동독의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동서독간의 인적·물적 왕래와 교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던 한국의 개성공단은 안보 이데올로기에 희생됨으로써 폐쇄되는 불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의 이어지는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여 정부가 국민과 입주기업의 안전을 위해 취한 조치가 아닌가요?


 “예, 그러나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얻으려고 했던 바를 얻었나요?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에 더 많이 기여하지 않을까요?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북한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남한 경제가 악화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지극히 경도된 생각입니다.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남한 경제에도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생산은 물론, 고용창출을 가져옵니다. 북한에는 유용한 광물자원이 많은데 이를 개발해 수출하면 그 이익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입니다. 북한을 도와주면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국제깡패만 살찌우는 결과만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 또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도와주는 모든 형태가 대량살상무기로 연결된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어떤 교류협력의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생각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북한 붕괴만이 유일한 답이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북한이 붕괴되면 즉각적인 통일 과정을 밟을 것이고 북한주민은 남한의 법·제도 아래 들어오게 됩니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남한의 기초수급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2,500만 명의 기초수급자를 우리와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해야 한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 북한 주민을 남한 주민이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남한에 온 새터민의 경우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남한 생활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남한 사회로부터의 무시를 당하는 것인데, 이런 감정이 대규모 집단적 성격을 띠게 되면 손상된 북한 주민의 자존심에 남한 주민의 삐뚤어진 우월감은 서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입니다. 북한이 망한다는 얘기는 나온 게 30년 전 부터입니다. 남한정부의 지원이 끊어진지도 오래되었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경제사정은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무기개발은 할대로 다 했지 않았습니까?”


 “항간에서는 남한에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과 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입장이 분명해 남북통일보다 먼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남남통일’이라고 봅니다.” 동서독 통일 전, ‘통일’에 관한 동서독인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랐는지 물어보았다.


 “서독인들은 통일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가 없었어요. 하지만 교류나 협력은 많이 있었죠. 서독인은 누구나 환전만 하면 동독에 갈 수 있었고요. 서독에 있었던 저도 동독에 가보곤 했죠.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종교대회, 도시간 자매결연, 청소년 교류모임 등 등 동독에서 서독으로 오고, 서독에서 동독으로 가는 교류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동독에서 좋은 신발로 사랑을 받았던 버켄스탁(Birkenstock)은 동독에서 생산된 것이었어요. 교류와 협력을 통해 동독사람들은 ‘서독은 잘 사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벽이 무너지고 나니 통일하는 것이 우리가 잘 사는 길이겠다!’라고 생각해 통일을 강하게 원했던 것이죠. 무너진 장벽이 통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장벽이 무너진 후 통일을 원했다는 그들의 경험이 노자의 유생어무(有生於無)를 떠올리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완성된 마음에서 먼저 생겨난다. “그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동독 사람들이 서독을 너무도 잘 알았던 것이었어요.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외칠 때 동독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자유로운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동독 주민은 동유럽으로의 여행은 자유로웠지만 서유럽으로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독인과 같은 자유로운 여행을 원했습니다. 자유여행에 대한 열망이 시민혁명으로 고조되었고 마침내 동독 정부가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동독정부는 서방세계로의 여행을 허락하면서도 여러 가지 제한을 둘 수 있었으나 여행 제한을 해제하는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에서 동독관리(귄터 샤보스키)의 말실수로 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죠. 그는 여행 허용이 언제부터 유효하느냐의 질문에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당장”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동독주민이 장벽을 밀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등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면서 남한이 북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산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잘 알죠. 그러나 북한에 동독에서 일어났던 일이 벌어지려면 결정적인 순간이 와야 합니다. 그래야 동독 주민들처럼 들고 일어날 수 있죠.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에 북한의 주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남한을 잘 알고 부유해져야 합니다. 잘 살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하게 원하게 되죠. 그들이 ‘스스로’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협동농장 같은 것을 개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한식 생활과 제도를 원하게 됩니다.”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북한에는 2002년 이후 시장이 생겨났고 지금은 시장 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이 80%이상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수입이 전체수입의 7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통해 큰 돈을 번 사람, 일명 ‘돈주’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기시외버스노선 같은 것을 움직이고 있어요. 1990년대 이후에 북한에서 태어난 ‘장마당 세대’는 현재 20~30대로서, 북한 사회 변화의 주역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배급망이 붕괴된 이후에 태어나 가뭄과 추위로 극심한 발육장애를 겪는 젊은이들이죠. 이들은 현 정권의 얘기는 안 듣습니다. 그들 중에는 코리안 드림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아요.”






 김영윤 회장이 제시하는 통일 방안은 다음과 같았다.


 “통일이 아닌 통일과 같은 상태, 즉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대북 적대정책은 사실상의 통일정책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할 수 있고,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북한 전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과 친척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해 사업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인원과 물자가 육로를 통해 오고 갈 수 있게 되면, 정치·제도적인 통일이 되지 않아도 통일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런 정책을 정권의 바뀜과 무관하게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꾸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남한화(化)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간의 정치·군사문제를 경제협력 문제와 분리시켜야 합니다. 북핵문제와 같은 정치·군사적인 문제는 국제차원의 대화와 함께 경제협력을 통해 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해요. 서독의 브란트 수상의 대동독 정책과 같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체제의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그들 스스로 체제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북한의 원자재가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지고, 육로가 연결되어 중국, 북한, 평양, 개성이 이어지면, 북한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도로, 철도 연결로 직교역이 많아지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민주화 바람이 들어가게 됩니다.”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통일문제, 북한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정치는 더 이상 남북문제를 이슈로 표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통일을 위한 교류와 협력이 꾸준히 지속 되어야 합니다. 남북물류포럼의 캐치프레이즈가 ‘물류로 남북을 하나로’가 아니겠습니까?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어서 극동러시아, 사할린, 몽골, 유럽 등과 연결되면 우리의 후대들은 사고의 스케일이 달라집니다. 섬나라 인식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사회간접시설을 건설 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많이 늘어납니다. 북한에는 남한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자원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남북한 인권과 평화가 실현되고, 세계 각국의 대북한 투자, 북한 여행에 관심을 쏟는 그런 하나 된 남북한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향한 김 회장의 사랑과 열정이 쏟아지자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다. 남북의 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에서도 남북물류포럼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에서도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며 여기까지 온 그의 열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독일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BVL을 이제는 한국에서도 BVL Korea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던 김 회장에게 앞으로 BVL Korea에게 기대하는 바를 물었다.


 “남북 물류길이 연결되어 흐르고, 평양이나 개성에서 BVL Korea와 남북물류포럼이 함께 컨퍼런스를 여는 날을 고대합니다. BVL Korea도 남북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대북한 교류협력도 주도하는 역할을 해 주셔야 합니다. 국외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보도 알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적극적인 역할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 회장이 “남북이 다정하게 사는 그 날까지 이 길을 가겠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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