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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배로 떠나는 유럽,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이 멋진 이름은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가졌다. 대단한 의미의 그 뜻처럼 블라디보스토크는 예로부터 러시아의 극동 전진기지이자 중요한 항구였다. 현재도 러시아 극공함대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자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항로의 요충지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철도 요충지이기도 한데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반도 땅 북쪽에 위치한 연해주에 위치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관광지역화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예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다.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이어진 시기에는 군사요새화되어서 외국인은 물론 러시아 내국인들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지역이었다. 1860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서 베이징조약이 체결된 이후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되자 생활고에 쫓긴 조선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고려인’이라 불리면서 한민족 이민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다. 일제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한 연해주 인근이 토벌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얼어붙어있던 시기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이러닉하게 자유분방한 열기가 넘쳐났다. 유럽문화의 끝자락과 동양이 만나는 지정학적 요인도 있었겠고 변혁의 한복판에서 벗어난 변방이란 점도 작용을 했었으리라.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목숨을 바치기로 각오한 의열단 청년들이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생애 한 번의 뜨거운 연애를 하던 곳도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다. 일제하 연해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신한촌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해 있었다. 홍범도, 이상설, 이위종 최재형 등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럽이면서도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의 땅이었던 것이다. 
 
 러시아 행정구역인 블라디보스토크가 외국인에게 개방된 것은 1992년이었고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는 국제도시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무비자로 블라디보스토크 입항이 가능해져 러시아 여행이 더 수월해졌다.

 현재 강원도 동해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DBS크루즈페리호가 출항한다. 1,500톤급 선박에 500명을 수용한다. 국제여객 크루즈답게 클럽, 바, 사우나, 면세점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서울과 부산을 출발해 동해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탈 수 있는데 4박5일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를 관광할 수 있다. 도로도 피서지도 사람과 열기로 들끓는 여름철, 북구의 시원함과 유럽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본다면 사뭇 이색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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