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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항, 풍성했던 오징어의 추억

 강원도 해안 휴전선 일대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거진항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과거 80~90년대에만 해도 거진항에 가서 1만원만 주면 장정 서 너명이 충분히 먹을만한 횟감을 썰어주곤 했다. 오징어철인 6~7월 무렵에는 싱싱한 산오징어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휴가나온 장병들에게는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 한잔이 천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거진항에 가보면 그런 후한 인심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항구 주변의 횟집에 들어가면 서울 등 도심 횟집 가격과 별 차이가 없다. 항구 좌판에 앉아 저렴한 값에 싱싱한 오징어를 풍성하게 먹는 일은 이제 거진항에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인심좋고 후덕한 강원도 사람들이 돈 맛을 알고 인심이 사나와져서 그럴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방도 도심의 소비문화권으로 통합이 되면서 돈이 중요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주민들이 돈에 집착해서 횟값이 비싸진 것은 아니다. 항구에서 먹는 저렴한 산오징어가 추억이 된 것은 거진항의 오징어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오징어는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이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부터 난류를 타고 동해를 거쳐 오오츠크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긴 여행을 한다고 한다. 동해 바다가 오징어가 좋아하는 온도가 되는 6월~7월 무렵 거진항 일대는 오징어철이 된다. 그러나 과거 이맘 때 오징어 풍년이던 거진항의 오징어 수학량은 이미 10여년 전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급감했고 그나마 해마다 감소 추세라고 한다.

 10여년 전 중국과 북한의 어업협정이 이루어진 후 중국어선들이 원산항 일대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듯 포획하기 시작한 것도 오징어 감소의 한 원인이라고 한다. 오징어를 잘 안 먹던 중국사람들이 오징어를 즐겨 먹게 되면서 국내산 오징어는 더 귀한 몸이 되고 말았다.

 오징어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대표적인 어종 중 하나다. 산오징어 회로도 먹고 찜으로 먹고 데쳐서 먹고 말려서 간식으로 먹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먹는 품목이다. 그렇게 수요가 많은데 수확량은 떨어지니 일부 수요를 수입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됐다. 우리가 마트 등에서 사 먹는 오징어채의 상당부분은 페루 등 외국에서 수입한 오징어이거나 원양어선에서 잡은 것들이다.

 예전에 맛 보던 국내산 싱싱한 산오징어를 맛보려 거진항까지 갔다가 너무 비싼 가격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서운해 할 일만은 아니다. 오징어가 예전처럼 안 잡히고 지역경제가 돌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거진항은 과거 명태잡이로 큰 호황을 이루다가 국내산 명태가 씨가 마르면서 큰 곤란을 겪었던 곳이다. 오징어가 명태처럼 아예 사라져버리지는 않겠지만 이미 예년처럼 어민의 얼굴을 풍성하게 하는 어종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제는 산지에 갔다고 후한 현지 인심만을 바랄 수많은 없게 됐다. 싼 값에 싱싱한 회를 많이 먹던 즐거움은 추억으로 돌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음미하며 싱싱한 산오징어를 몇 점 즐기는 일 자체를 호사로 여겨야 될 듯하다. 오징어가 안 잡히면 오징어 가격이 더 비싸거나 아예 먹기 힘들수도 있으니 그렇게나마 한점 맛 보는 게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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