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이하 AIIB)’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역시 뜨거웠다. 지난 21일 해양수산부 주최로 개최된 ‘AIIB 출범과 아시아 항만 인프라 시장 진출 활성화’ 국제 세미나에는 예상 참석인원을 훌쩍 뛰어넘은 200여명의 한국 항만업계 및 투자 관계자가 운집하여 행사 마지막까지 발표자와 토론자의 의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입시 설명회 이후로 이렇게 뜨거운 열기는 처음 느껴본다’는 한 진행자 교수의 말처럼 침체기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는 AIIB의 출범을 통한 해외 투자분야 확대와 신수익산업 창출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상황이다.
세계 경제의 현 최대 이슈인 AIIB를 통한 개발 투자는 과연 한국의 관련업계에 득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파급효과는 얼마 만큼일까. 이번 세미나를 통해 논의된 사항들을 살펴보며 한국항만업계와의 상생방안을 가늠해본다.
AIIB의 정체성
AIIB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AIIB의 설립목적과 취지와 그 정체성을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 흔히 AIIB는 중국주도하에 세계 57개국이 참여하는 거대한 세계은행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달러 위주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기 원하는 G20 국가 중심의 새로운 경제성장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시작은 공교롭게도 서울이었다. 2010년 코엑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액션 플랜’의 첫 항목이 바로 ‘인프라’였고 이를 통해 이후 중국이 AIIB 출범 준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각국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낸 새로운 전략 방안이 중국의 국익과 만나 탄생한 것이 바로 AIIB인 것이다.
“AIIB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확장판. 2008년 경제위기로 미국 중심 세계금융의 폐해 맛 본 국가들의 참여 봇물 이뤄”
여기서 중국의 국익이라는 측면을 찬찬히 뜯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의 개혁개방을 통해 엄청난 외화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간의 수익모델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10%였던 성장률이 최근 몇 년 간 7.0%대로 감소하자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소득 격차 심화 및 투자과열 등 국내투자에 대한 반발이 일자, 중국은 바로 AIIB에 눈을 돌렸다. ‘주변국들과의 인프라 구축’이라는 탈을 쓰고 경제적 혜택이 비교적 적었던 중국 서쪽을 집중 발전시키기 위한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AIIB에 끼워 넣었다. 그만큼 중국의 동기가 강하게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반응은 뜨겁다. 애초 2-30개의 가입국가가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훨씬 많은 나라(57개국)들이 가입했다.현재 가입을 대기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다. 중국이 다른 나라의 가입에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국제적인 알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는 6명의 총재가 있는 것에 반해, AIIB는 1명으로 줄여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오로지 이 프로젝트를 빨리 성공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고로, AIIB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존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보다 전문적인 투자기구인 측면이 강하다. 둘째, 중국 내부경기부양에 큰 목적이 있다. 셋째, 중국이 기존의 수출자원형 경제구조에서 시장창출형으로 변화하려는 시점에서 인근국가의 원조자본성격을 띈다.
AIIB를 통한 글로벌 인프라 투자의 수요는 2030년께 57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중국은 30%의 자본을 투자하고, 26%의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한국의 해외 항만 인프라 사업 진출 가능성 현재까지 한국의 금융업체들은 해외 항만 프로젝트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대규모 공사의 경우 항만시공업체들은 해외 실적을 올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그 문제점에 대한 진취적인 개선방안이 논의 되었다.
AIIB를 통해 중국은 최우선적으로 항만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무엇도 확정된 바 없는 AIIB의 사업계획들 중 오직 항만계획만이 선공개 되었을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항만이 건설되는 것이 아닌, 약 15개의 기존 중국의 항만시설이 2배로 확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된 중국의 ‘시장창출형’ 구조로의 급격한 변화에 빠르게 발맞추겠다는 의도로 파악되며,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세계 생산기지의 역할이 향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예측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동남·남아시아 항만설비의 대대적인 확장 및 추가건설이 필요하며, 향후 AIIB 가입국간의 물동량이 늘어나는 만큼 연계된 항만 인프라 사업은 크게 증가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2030년까지 AIIB를 통한 57조 달러의 글로벌 인프라 투자 예상액 중 항만은 약 7,000억 달러로 약 0.7%를 차지한다.
그러나, 한국의 해외 항만 인프라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세미나의 토론 패널로 참석한 한국수출입은행 전시덕 팀장은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프라는 결국 토목산업인데 한국이 과연 인도와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상업성 있는 금융기관’이라는 AIIB의 성격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유럽부흥개발은행(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EBRD)'과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IFC)'의 경우 은행이 손해를 보지 않고 민간투자에게 손해를 씌우는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전시덕 팀장은 “어떻게 리스크를 분산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정책금융과 사업금융 사이에 고민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정부주도도 중요하지만, 업체가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현지사회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
항만건설 수주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명분과 공익성, 기업의 투자와 회수, 건설, 엔지니어, 금융, 국가간의 교류 등 많은 기관의 준비와 관리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익가능 사업을 모색하여 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발표된 세부 투자항목이 없기 때문에 정책적인 부분은 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수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유한 것에 비해 낮은 대외 인지도를 가진 한국은 보다 전략적이며 적극적으로 투자와 수주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관계자들은 정부주도의 정책 및 사업 전략을 수립해주길 원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해양수산부 박준권 항만국장은 워크숍 개최를 통한 신규발주사업에 대한 계기 확장과 한국과 중국의 항만협회가 포럼을 만들어 전략적 관계를 맺는 방안 및 예산 확대의 추진 등 정부가 추진하는 AIIB 인프라 사업 전략을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동남아 인프라 개발 현황을 소개하며 그 나라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산업을 발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더욱 안정된 투자와 수익창출이 가능하다며 업계에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다시 말해, 정부주도에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차원의 적극적인 연구와 현지 네트워크 확보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동남아 국가들은 항만에 대한 한국의 기술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실정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히 좋은 것을 감안할 때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중 항만협회의 포럼개최와 AIIB 한국 직원 증원으로 중국과의 네트워크 확충.
동남아 시장에서 한국 투자 전망 밝다”
무엇보다 AIIB 출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이 예상보다 빠른 진행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한국도 발맞출 필요가 있다. AIIB는 올해 3월 협의회가 출범한 뒤 이미 연말에 총회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수순이라면 2017년에는 프로젝트 검토가 끝나고 바로 돈이 나올 수 있는 일정이다. 이에 기획재정부 홍가영 사무관은 AIIB 관련 사업이 속도전임을 강조하며 현재 3천명의 직원 중 5명에 불과한 한국인 직원수를 대폭 늘려 향후 한국정부와의 극각적인 소통과 사업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방안에 주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북한지역 개발에 관해서도 중국은 정치적으로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북한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세미나에 참석한 북경대 딩 도우(Ding Dou) 교수는 AIIB는 개방되어 있으며 나라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일본에게도 계속 가입을 권유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하며 현재 중국은 북한과 인접한 랴오닝성의 잉커우항만 발전에 관심이 많다는 말로 북한 개발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임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