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부산신항에서 발생한 선박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도선사와 선장의 진술이 엇갈린 가운데, 당시의 기상 상태, 도선사 지시의 적합성 여부, 선장 및 선원의 지시 이행상의 과실, 그리고 선체 결함의 가능성 등을 두고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선박의 선장은 도선사 과실을, 도선사는 강풍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선사는 도선구역 내에서 선장을 대신하여 운항을 지휘하기 때문에 운항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선장과 도선사 간의 분쟁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번 부산항 사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우리나라 도선사의 과속과 도선 부주의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이며 그 책임과 처벌수위에 대하여도 논의가 지속되어왔다. 2016년에는 도선사가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면 면허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도선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도선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선장과 도선사 중 어느 쪽에 책임의 무게가 실릴까. 이로 인해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도선사에게 손해배상의 의무가 있을지 관련 법률을 살펴본다.
도선계약의 법적 성격
도선사와 선장의 책임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도선계약의 법적 성격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세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는 ‘도급계약’으로 보는 견해, 둘째는 ‘고용계약’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마지막은 ‘위임계약’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렇게 여러 의견이 제시되는 것은 우리 법률상 도선계약의 성격에 관한 명확한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이다. 도선계약의 성격을 도급계약으로 본다면, 도선행위에 있어서는 안전하게 선박을 접안시키는 것이 업무의 완성이라 볼 수 있고, 도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업무를 완결하지 못한 것이 되어 결국 도선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견해는 ‘1910 선박충돌협약’이나 다른 국가들이 도선사 책임을 면제 또는 제한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고용계약은 노무의 제공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이며 결과의 성취여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도선계약을 고용계약으로 본다면 도선사는 선장을 보조하는 피용자에 불과하고 선박의 운항지휘에 대한 법적 권한은 여전히 선장이 갖는다. 그러나 도선구역 내에서는 온전히 도선사의 재량으로 선박을 운항하기 때문에 이 견해 또한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위임계약은 특정한 업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승낙함으로써 성립되는 계약이다. 도선계약을 위임계약으로 본다면 선장은 도선구역에서 도선사에게 선박을 조종하도록 운항권을 위임하지만 선박의 운항지휘권은 여전히 선장에게 있다. 또한 선장은 도선사의 항행을 감시·감독할 의무를 가진다. 도선사는 해당 항만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일정 구간에 대한 자유재량권을 부여받지만 이는 도선사가 선장에게 위탁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도선에 관련한 법체계
우리나라 법률상 도선에 관한 사항은 도선법과 상법에서 그 관련 규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법률은 아니지만 도선약관에서 추가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을 정해놓고 있다.
도선법 제18조 제4항은 “도선사가 선박을 도선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 선박의 안전한 운항을 위한 선장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하고 그 권한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도선약관에서도 도선사의 법적 지위를 선장의 선박운항에 관한 운항조언자로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도선사가 선박운항을 지휘하더라도 선장이 여전히 법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도선사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간접적이긴 하나, 상법 제880조 역시 도선사 과실로 선박충돌이 발생한 경우에도 선박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도선 중인 선박이라 하더라도 선장이 운항책임자로서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상법이나 도선법은 도선사 과실에 의한 손해 발생의 경우 선주의 책임이 있음은 명시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도선사의 책임에 관하여는 언급이 없다. 도선약관에서 도선사의 책임에 대한 면책규정을 두어 선주의 책임과 도선사의 책임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도선사의 책임은?
상법에 규정되어 있는 선박충돌 이외에도 도선사의 과실로 인한 해양사고는 선장과 도선사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법감정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들은 도선사의 법적 지위를 단순한 선장의 조언자로 보아 도선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도선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많은 나라들에서 도선사의 손해배상책임은 대체로 해당 도선료를 최고한도로 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우이산’호가 여수항 원유부두에 충돌하여 발생했던 원유 유출사고의 원인은 도선사의 무리한 선박 접안 시도였다. 당시 우이산호의 속도는 7노트로 도선구내 안전속도를 한참이나 초과한 것이었다. 2006년 부산항에서의 ‘현대 하모니’호 충돌사고 당시 도선사는 도선구역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조기하선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도선사고가 계속하여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어 ‘항내의 안전 운항’을 위한다는 도선제도의 취지가 무의미해질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도선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기존의 징계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번 부산항 ‘밀라노브릿지’호 사고는 부디 도선사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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